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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언제, 어떻게, 왜 어려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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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zio Cattelan, Comedian, 2019, © The Conversation / Michael craig-Martin, An oak tree, 1973, © Michael Craig-Martin Foundation

미술관에 있으면 다 작품인가? 싶은 미술 작품들, 아마 한 번쯤 보셨을 겁니다. 벽에 테이프로 붙인 바나나, 미술관 선반에 올려진 물컵. ‘아, 내겐 너무 어려운 현대미술!’하고 지나가기엔, 어마 어마한 금액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벽에 붙인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 Comedian> (2019)은 1억 4천만 원에 팔렸고, 선반 위 물컵 작품, <오크 나무 An Oak Tree> (1973)는 2,500만 원에 팔렸습니다. 누구든 똑같이 만들 수 있는 작품인데, 어떻게 이 가격이 형성된 걸까요? 이 물건의 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서 예술작품으로 여겨진 걸까요? 아무리 헤아려보려 해도, 난해하기는 그지없습니다.

 

모든 예술은 과거에 현대미술이었습니다.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인상주의 사조 역시, 당시엔 현대미술이었죠. 그리고 ‘난해하다'는 이유로 핍박당했습니다. 인상주의라는 이름도 ‘그림에 요소는 없고 인상만 흐릿하게 있을 뿐'이라는 비난에서 붙여진 것이에요. 당시엔 새롭게 등장한 사조였지만, 모든 새로운 것들은 초기에 난해하게 여겨지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하더라도,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인상주의 작품은 그림처럼 보이기라도 하는데, 현대미술은 전통적인 회화와 거리가 꽤 멀기 때문이죠. 현대미술이 오늘날의 모습처럼 난해해지게 된 계기는 19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대미술의 첫 번째 특징, 난해함: 아이디어가 작품이 되는 현대미술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 wikipedia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보지만, 통상적으로는 1917년 등장한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의 <샘 Fountain> 작품 이후 작업들을 현대미술 작품으로 분류합니다. <샘>은 기성품인 변기에 작가가 서명한 후, 미술관으로 가져와 작품화한 작업이에요. 전통적인 미술의 형식과 내용을 부정한 이 작품은 당시 많은 충격을 안기며 미술계에 ‘개념미술'이라는 새로운 사조를 탄생시켰습니다.

개념미술이란, 작가가 제시한 개념, 아이디어가 곧 예술작품이 되는 사조입니다. 때문에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아이디어의 기발함을 추구하죠. <샘> 이후, 작가의 아이디어가 작품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면서, 현대미술 작품은 전통적인 회화와 멀어지게 됩니다.

 

 

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 1965 © MoMA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조셉 코수스의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One and three Chairs>에요. 1965년 등장한 이 작품은 실제 의자와, 이 의자를 촬영한 사진, 그리고 의자의 정의를 적어둔 텍스트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 코수스는 ‘의자란 무엇인지', ‘어떻게 의자를 재현할 것인지', ‘어디까지가 의자인지’ 등의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죠.

 

이후 개념미술은 네 가지 분류로 나뉘게 됩니다. 마르셀 뒤샹의 <샘>처럼 기성품을 예술로 만드는 레디 메이드 경향, 조셉 코수스의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처럼 의자가 예술품이 되는 맥락을 제시하는 ‘개입', 기록, 지도, 차트 등을 제시하는 ‘자료 형식', 텍스트 그 자체가 작품이 되는 ‘언어'. 이들은 모두 기존 미술에서 재료로 여겨지지 않던 재료들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현대미술은 난해함을 더했습니다.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미술사적 맥락을 알아야만 하는 경우가 생겼죠. 작가의 아이디어가 작품이 된 흐름을 넘어, 재료로 여겨지지 않던 것들이 재료가 된 흐름까지 이해해야, 이들이 작품으로서 갖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한편, 즉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통적인 회화 작품들도 꾸준히 만들어졌습니다. 이 작품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아요. 하지만, 모든 작품이 잘 팔리는 건 아닙니다. 현대미술에 있어서는 작가의 유명세가 작품 가치 판단에 주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에요.  

 


현대미술의 두 번째 특징: 유명세는 돈이 된다

Damien Hisrt © Artsy

현대미술에서는 ‘브랜드 파워'가 그 어느 분야보다 강력하게 작용합니다. 유명 컬렉터나 갤러리, 미술관, 경매회사처럼 미술시장에서 권위를 가진 기관이 선택한 작품을 ‘공인된 혁신적 작품'으로 받아들이죠. 일례로 데미안 허스트 Damien Hirst의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작품은 처음 등장했던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죽은 상어를 박제한 작품이 어떻게 미술작품이 되는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했죠.

 

하지만 이후, 현대미술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컬렉터이자 갤러리스트, 찰스 사치 Charles Saatchi가 이 작품을 사들이며 홍보했고, 작품은 유명세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이후 이 박제 상어 작품은 1,200만 달러 (한화 약 155억 원)에 판매되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죠.

 

찰스 사치 © European CEO
Damien Hisrt,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 (1991) © Artsy

반대로 말하면, 한번 브랜드 파워를 얻게 된 작가는 어떤 작품을 내놓아도 시장이 계속 열광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소수의 선택된 작가만 부를 가져가게 되겠죠. 그리고 이렇게 선택된 소수의 작가들은 일반 대중이 납득하기 어려운 과정으로 주목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사례처럼, 미술계 소수 권력자에 의해서만 결정되어 관객에게 제시됩니다. 이 때문에 대중은 미술계 소수 엘리트들이 정한 규칙 안에서 인정받은 작가들 작품만 선택적으로 소비하게 되죠. 대중에게 설득하는 과정 없이 선보여진 작가들은 대중이 현대미술을 난해하게 느끼는 데 한몫합니다.

 

 

현대미술은 왜 비싸게 팔릴까?

© Sotheby's

앞서 살펴본 바나나 작업이나 선반 위 물컵 작업들은 모두 수천만 원대에 거래되었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작품이 고가에 팔렸다는 점은 충격을 자아내고, 충격적인 이야기는 널리 퍼지게 되죠. 이때문에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비싸다 여겨지지만, 오늘날 사실 제일 비싼 그림은 인상주의 작업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인상주의 작업 대부분이 이미 미술관 소장품이 되었거나, 개인 컬렉터 소장품으로  들어가 시장에 더 이상 나오지 않기 때문이죠. 이 때문에 인상주의 이후의 예술인 현대미술로 컬렉터들은 조금씩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미 구하기 어려운 근대미술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큰 수익을 낼 가능성이 있는 현대미술로 눈을 돌린 겁니다.

 

© Artsy

더불어 전 세계적으로 수집가층이 젊어지는 것도 현대미술의 인기 요인입니다. 젊은 수집가들은 이전의 X세대 수집가들이 근대미술에 집중했던 것과 달리, 동시대의 다양한 장르 작품들을 선호합니다. 현대미술 특유의 화려한 색감, 실험적 기법, 독특한 아이디어는 클래식한 근대미술과 다른 매력으로 젊은 컬렉터들의 취향을 저격하고 있습니다.


난해하다 느껴지는 현대미술. 미술은 우리 사회를 반영합니다. 과거보다 장르도 다양하고 작품 세계도 복잡해진 만큼 공부해야 할 것도 많지만, 우리 사회를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는 작업들은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죠. 현대미술의 가치는, 아는 만큼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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