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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품 컬렉팅 팁

미니멀리즘은 어떻게 예술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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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 Flavin, “Monument” for V. Tatlin, 1967 Courtesy Fondation Louis Vuitton. © Adagp

미니멀리즘 예술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시작점이라 불립니다. 본질에 집중하면서 다양한 시도를 한 끝에,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했기 때문이죠.

 

미니멀리즘의 영향력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과거엔 연극, 영화, 디자인, 문학에까지 폭넓게 사용되었어요. 오늘날엔 인테리어에서 주로 활용되고요. 장르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같습니다. 단순함을 추구하며 모든 기교를 지양하고, 근본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

 

 

왜 시작됐나

Georges Braque, Bottle and Fishes (1910-12) © ADAGP, Paris and DACS, London 2023

미니멀리즘이 시작되던 때, 예술 씬에서 가장 주요한 장르는 모더니즘이었습니다. 모더니즘의 원리는 ‘장르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었어요. 회화는 회화답게, 문학은 문학답게, 연극은 연극답게 만드는 것이 모더니즘의 기본 전제였죠. 그리고 회화에서 모더니즘이 집중한 순수성은 ‘평면성’이었습니다. 당시 그려지던 모든 작품은 2차원의 캔버스 위에서 그려졌기 때문이죠.

 

새로운 예술 장르는 기존의 것을 부정하며 출발합니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모더니즘이 내세우는 ‘평면성’만이 예술의 본질은 아니라고 봤어요. 더 고유하고, 더 본질적이고, 더 순수한 가치가 있을 거라고 봤죠. 회화의 요소들을 하나씩 덜어내며 그들은 본질에 다가갑니다. 무엇이 본질인지 찾기 위해서, 부수적인 것들을 제거하는 시도를 한 거죠.

 

이윽고 그들은 전통적인 페인팅에서 벗어나, 사물 그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했어요. 기존에 회화 작품이 갖는 형식적이고 시각적인 요소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미니멀리즘이 시작되던 1960년대에는 파격적인 일이었어요. 수 천년 간 쌓아온 회화의 전통을 붕괴시키는 일이었거든요.

 

 

미니멀리즘의 예술적 당위성

Donald Judd, Untitled (1966-68) © MoMA

이렇게 미니멀리즘은 혁명적으로 시작했습니다. 혁명적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움직임이 됩니다. 그리고 이 움직임이 역사에 기록되면 운동이라 불리고요. 미술사적으로 의미나 가치까지 인정받으면 미술 사조가 되죠.

 

미니멀리즘은 명확히 미술사조로 불립니다. 그 이유는 ❶ 미니멀리즘 작품이 갖는 명확한 특징이 있고, ❷ 이들이 미술사적으로 유의미한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Carl Andre, Equivalent VIII (1966) © Carl Andre/VAGA, New York and DACS, London 2023

미니멀리즘 작품들이 갖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아요.

① 작가의 개입을 배제한다

② 공장에서 제작된 기성 재료를 사용한다

③ 작품이 반복적으로 배치되는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미술사적 가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What: 예술의 본질에 집중한다

② How: 평면성과 사물성을 극단으로 강조한다

③ Why: 장르의 순수성을 극한으로 탐구했다

④ As a Result: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했다

 

 

미니멀리즘 사조의 대표 예술가들

Dan Flavin, Conered Fluorescent Light (1966-68) Photo by John Berens

장르가 장르로 인정받기 위한 가장 강력한 근거는 작품이에요. 미니멀리즘도 다른 사조와 마찬가지로 대표 예술가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소개할 건 형광등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는 댄 플레빈 Dan Flavin(1933-1996)이에요. 댄 플레빈은 형광등을 겹쳐놓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기하학적인 형태를 한 형광등은 때론 다채로운 색깔을 뿜어내기도 해요. 형광등에서 나온 빛은 서로 뒤섞이며 또 다른 색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미니멀리즘에서 ‘작가의 개입을 배제한 작품’으로 불려요. 예술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 많은 것을 덜어내면서, 작가의 개성까지 덜어내버린 거죠. 실제로 댄 플레빈의 작업에서 작가가 한 일은 재료를 선택하고 배치하는 일뿐입니다. 사용된 형광등은 모두 기성품이고, 실제 작업을 수행하는 건 직공이나 조수죠. 작가의 개입이 배제되어 있습니다. 작가가 담아내려고 하는 메시지나 의도도 없어요. 이 역시 작가의 개성이 묻어나기 때문이죠. 그저 사물이 만들어내는 질서, 단순함, 조화만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Donald Judd, Untitled (1978) Judd Foundation. © Licensed by VAGA, New York, N.Y.

뒤이어 소개할 예술가는 도널드 저드 Donald Judd (1928-1994)에요. 저드는 상자 모양의 단위체를 반복적으로 쌓아올린 작업을 선보입니다. 이렇게 반복적인 형식을 사용한 건, 공간을 탐구하는 방식이라고 해요. 저드는 1964년에 특정한 사물 Specific Object라는 에세이를 썼는데요. 책에서 저드는 예술적 가치는 환상이며 이런 환상을 제거하고 본질에 집중하겠다 언급합니다. 그리고 환상이 ‘공간’에서 온다고 보고, 공간을 탐구하기 위해 반복적인 작업을 선보였어요.

 

이후 1968년, 40세의 나이에 저드는 뉴욕에 5층짜리 건물을 구입합니다. 본인 작품을 영구적으로 전시하기 위함이었죠. 공간을 지독하게 탐구하다 보니,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가 자신의 작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이었습니다. ‘큐레이터의 무능함이나 이해 부족이 작품의 품질을 저하시킨다’는 이유로 공간을 구매해 작품을 전시하기로 한 거죠. 이처럼 저드는 지독하리만치 예술의 본질에 집중하고, 공간이라는 환상을 파고든 작가입니다.

 

Carl Andre, 144 Pieces of Zinc (1967) courtesy Debra Brehmer

마지막으로 다룰 예술가는 칼 안드레 Carl Andre에요.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을 활용한 작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벽돌들은 모두 똑같은 높이, 질량, 부피를 가져요. 완벽하게 동등한 개체들입니다. 앞서 소개한 댄 플레빈보다 보편적인 재료를 사용했고, 도널드 저드보다 더 반복적으로 작품을 배치합니다.

 

칼 안드레의 독특한 점은 작품을 바닥에 둔다는 거에요. 절대 작품을 좌대 같은 받침대에 올려두지 않습니다. 단순히 보는 대상이 아니라, 미술관의 일부가 되면서 관객과 공간의 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함이에요. 관객은 작품 위로 걸어 다닐 수도 있고, 누울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과 예술적 순간 사이,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기 위한 시도였죠.

 

Carl Andre, Fall (1968) Art © Carl Andre/Licensed by VAGA at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이처럼 세 작가는 미니멀리즘 사조의 특징을 모두 가지고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작가의 개성이나 특징은 배제한 채, 기성 사물을 반복적으로 사용하죠. 이런 작품은 예술의 본질에 집중하기 위한 시도였고, 각기 다른 방식으로 회화의 가능성을 확장합니다.

 

댄 플레빈의 형광등은 전시가 진행됨에 따라 교체되기도 하는데요. 이후 데미안 허스트의 상어 작품이 썩어 문드러질 때, 교체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했습니다. 칼 안드레의 밟아도 되는 작품은 관객 참여형 작품의 계기가 되었고요. 예술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한 그들의 시도는 다양한 예술의 확장으로 이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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