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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셀프 브랜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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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늙어도 작품은 늙지 않는다. 가장 트렌디한 80대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 오늘날 호크니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건 입니다. 이 작품은 1972년, 호크니의 나이 35살 때 그려졌어요. 그리고 2018년 경매에서 1019억 원에 낙찰되었죠. 당시 생존 작가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이었고, 오늘날엔 두 번째로 비싼 작품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30대에 이룬 전성기 작품은 로스앤젤레스의 주택 안, 수영장 풍경을 그려냈는데요. 호크니 특유의 아름다운 색감이 로스앤젤레스의 화창한 날씨와 맞아떨어지며,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어요. 이 시기 만들어진 작품이 호크니의 전성기이자, 대표 작품으로 불리죠. 영국에서 나고 자란 호크니가 로스앤젤레스로 간 건 서른살 때. 이유는 딱히 없었다고 해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저 ‘태양이 나를 로스앤젤레스로 이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중국을 혐오한 중국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 모든 중국 예술가는 국가의 검열을 당합니다. 정치와 전혀 연관 없는 작업을 하는 작가도 마찬가지죠. 이들은 모두 자기 작업을 정치와 연관 짓지 않으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모든 작업을 정치와 연관 짓는 중국 작가도 있습니다. 바로, 아이 웨이웨이죠. 그가 정치를 작품에 끌고 온 이유 그의 작품은 도발적입니다. 자금성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리거나, 감시와 검열을 상징하는 작품을 만들거나, 한나라 시대 유물을 박살내는 등 다양하죠. 작품이 문제가 되며 강제 연행된 적도 많은데, 그 순간 셀카를 남겨 이를 작품화했습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코로나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며, 연구 중 유출되었다는 내용의 다큐멘터리를 만들기도 했고요. 모두 중국의 과거와 현재를 다루는 수위 높은 작업들인데요. 아이 웨이웨..
목숨 걸고 예술하는 퍼포먼스계 할머니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올해 77세, 1946년 생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을 퍼포먼스계 할머니라 부릅니다. 새빨간 원피스 차림으로 관객을 빤히 응시하는 이 작업 가 그의 대표작인데요. 사실 마리나의 작업은 굉장히 과격합니다. 칼로 손가락 사이를 쉴 새 없이 내리치는 작업을 선보이거나, 관객이 도끼와 총으로 자신을 공격하게 하거나, 공업용 선풍기를 기절할 때까지 쐬는 등. 과격한 행위예술의 선도주자로서 충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였죠. 마리나가 이렇게 수위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표현하기 위함이죠. 피와 눈물로 만들어낸 퍼포먼스 아트 마리나의 대표작, 는 2010년 뉴욕을 가장 뜨겁게 만든 작품입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단호한 무표정으로 관객과 마주하고 있죠. 작가를 마주한 관객은 몇 분이..
천재를 동경한 찐천재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 츄파츕스의 포장 디자인을 한 예술가, 살바도르 달리. 달리는 순수 예술가였지만 동시에 상업 디자인 분야에서도 엄청난 성과를 냈습니다. 그뿐인가요, 스릴러 영화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의 러브콜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고, 디즈니와 함께 단편 애니메이션을 연출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강연을 진행하며 자신의 예술세계를 전파하고, 살아있을 때 수 차례 자서전을 쓰고, 티비나 라디오 등 매체에 등장하길 꺼리지 않은 예술가이기도 합니다. 달리는 오늘날 현대미술 작가들의 귀감입니다. 난해해지고 치열해진 미술시장에서 작가들은 자신을 브랜딩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100년 전 활동하던 작가인 달리가 해온 것들이죠. 천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 숨 쉰다며, 자신의 죽음도 믿지 않는다고 말한 달..
대규모 팝업 예술가,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 특징 5가지 수십, 수백, 수천억 원에 거래되는 미술작품들. 작품의 가격은 놀라운 소식으로 보도되곤 합니다. 그리고 60여 년 전, 미술품이 투자 수단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1960년대에 이런 흐름에 저항해 팔릴 수 없는 예술 작품을 선보인 이들이 있어요. 바로, 크리스토와 잔 클로드죠. 이들의 작업이 팔릴 수 없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이들 작업이 '대지'를 캔버스로 삼기 때문이고, 둘째는 2주~3주 정도만 전시하고 작품을 철거하기 때문이죠. 이 작품은, 마이애미의 섬 11개를 포장한 작업이에요. 핫 핑크 색깔의 천으로 섬 주변을 둘러쌌죠. 사용된 천의 규모는 약 18만 평. 거대한 자연을 포장해 낸 작업은 시간도, 돈도, 인력도 많이 들어가지만 2주 남짓 전시되고 무조건 철거됩니다. 컬렉터도, 미술관도 작..
김환기: 50년의 예술적 노력이 현대미술에 한 획을 긋다 김환기 작가의 회고전이 호암미술관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김환기 작가는 20세기 한국 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에요. 서구의 시선에서 처음 주목한 한국인 작가이기도 하고, 국내 미술시장에도 유일무이한 성과를 남긴 인물이기 때문이죠. 한국 미술품 최초로 100억 원을 넘긴 인물이자, 한국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 top 10 중 9점에 김환기의 작품이 올라있습니다. 언뜻 김환기는 운이 좋은 인물로도 보여요. 한국 전쟁 후 어려운 시기, 남들은 먹고살기 바쁠 때 예술을 하던 인물이었고 이 덕분에 서울대, 홍익대 교수 등을 역임하며 사회적 명성도 얻었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50년간 삶을 치열하게 살아낸 한 인간이 있었습니다. 탐미주의자, 김환기 우선 예술가로서의 김환기를 알아가 볼게요. 김환기 작가는 상..
'에드워드 호퍼'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5가지 키워드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장르 전시/행사 기간 2023.04.20(목)~2023.08.20(일) 장소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립미술관 20세기 미국 사실주의 회화의 아버지, '에드워드 호퍼 Edware Hopper (1882-1967)'. 호퍼의 작품은 도심 속 건물 사이사이, 따뜻하면서도 어딘가 차가운 인상을 풍기는 색감과 그 안에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려냅니다. 아름다운 작품 속 사람들의 표정에선 어딘가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호퍼의 작품 속 고독함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요? 소심하지만 그림을 누구보다 사랑하던 아이 호퍼는 어린 시절, 소심한 아이로 불렸습니다. 친구들은 키가 크지만 말랐던 호퍼를 '메뚜기'라 부르며 놀리곤 했죠. 호퍼는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을 피해 방에서 그림을..
공대생의 아이디어가 현대미술을 바꾼 방법 | 알렉산더 칼더 여러분 혹시 '모빌' 들어보셨나요? 모빌은 '천장에 매달아 두는 유아용품'을 일컫는 말로도 불리지만, 요즘엔 인테리어 소품이나 오브제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빌의 시작을 만든 현대미술가가 있어요. 바로, 공대생 출신의 예술가 알렉산더 칼더(1898-1976)죠. 칼더는 1930년대, 천장에 매달린 채 흔들리는 조각작품을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 이 조각작품은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사람들이 놀란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1] 움직이는 조각 작품이 세상에 등장하다 첫째로는 '조각 작품을 받침대에서 벗어나게 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이전까지 조각 작품의 받침대는 마치 회화 작품의 액자처럼 꼭 함께 가는 존재였어요. 이 받침대는 '좌대'라고 부르는데요, 작품+..
예술가가 언론으로 돈 버는 방법: 앤디 워홀의 7가지 전략 앤디 워홀은 언론을 교묘하게 이용한 첫 번째 예술가입니다. 스스로를 매력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언론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또 잘 해냈죠. 어느 정도 브랜딩이 완성되고 나서 앤디는 직접 잡지를 창간하고 TV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앤디 이전까지 예술가는 그저 그림 뒤에만 존재하는 사람이었다면, 이후엔 그림보다 앞에 서서 대중을 맞이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죠. 앤디 워홀의 성공 전략 2화, 입니다. 겉모습부터 사생활까지 완벽하게 연출하다 겉모습 | 언론을 이용하기 위해선 그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을 계속 흘려야 했습니다. 앤디는 상업사회로 접어든 시점에, 상업적 특성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인 것처럼 스스로를 꾸몄습니다. 성형한 코, 이국적인 은색 가발, 두꺼운 화장, 독특한 ..
앤디 워홀이 굳이 '실크스크린'을 쓴 이유 앤디를 만났을 시점엔 이미 상징적인 인물이었어요. 자신을 상품화하는 거죠. 나쁜 말처럼 들리지만, 좋은 의미로 말이에요. 한 사람의 존재가 브랜드화된다는 건 요즘은 흔한 일이잖아요. 그 시초는 앤디 워홀이라고 할 수 있어요. -래리 가고시안 Larry Gagosian, 가고시안 갤러리 설립자 일반인이 예술가가 되는 방법 최근 100년의 미술사에서 딱 한 명의 예술가를 남기라면, 아마 앤디 워홀이 될 것입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시도를 했고, 그 시도가 곧 트렌드가 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고 발전 중이기 때문이죠. 비범한 인물의 시작은 확실히 남들과 달랐습니다. 앤디는 가난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났고, 어렸을 때부터 신경질환을 앓았습니다. 색소 결핍증으로 피부와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기도 했죠. ..
오타쿠를 동경한 엘리트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무라카미 다카시 (Murakami Takashi, 1962~)는 오타쿠 문화를 순수예술로 끌고 온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전형적인 오타쿠 문화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죠. 통통 튀는 이미지 속, 귀여운 캐릭터들의 모습. 작은 크기의 피규어를 사람 크기로 키운 작업들. 이들은 전형적인 오타쿠 문화를 무라카미가 본인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결과입니다. 이런 오타쿠스러운 작품들로 무라카미는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193억 원에 낙찰되었고, 대중을 대상으로 작품을 팔기 위해 회사도 설립했죠. 그가 주창한 이론은 미술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커리어는 다 선보였죠. 무라카미는 자신의 노하우를 거리낌 없이 전하는 예술가입니다. 2006년, 그는 을 출판..
트레이시 에민이 성관계한 침대를 전시한 이유 트레이시 에민의 첫 등장 트레이시 에민은 선정적인 논란으로 주목받아, 오늘날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작가입니다. 작품 평균가는 7억 7천만 원, 최고 낙찰가는 55억 원에 달하죠. 금액적인 성과뿐만 아니라, 영국 내에서는 데미안 허스트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브랜딩의 측면에서, 그 누구보다 뾰족하고 정확하게 자신을 디자인했기 때문이죠. 본인의 성생활을 예술 작품으로 풀어낸 자전적이고, 자극적인 작가 트레이시 에민. 그는 어떻게 셀프 브랜딩을 구축했을까요? 트레이시 에민이 처음 세상의 주목을 받았던 건, 1997년 열린 전시였습니다. 이 전시는 박제상어로 인기를 끈 데미안 허스트가 찰스 사치와 손잡고 영국왕립아카데미에서 진행한 전시인데요. 전시회는 제목처럼 센세이션 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마크 ..
데미안 허스트가 '약국' 컨셉 레스토랑으로 돈 버는 방법 오늘날의 예술가는 작품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파는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가 곧 작품 가치로 직결되죠. 이런 흐름 속 작가들은 과거처럼 신비롭게 꽁꽁 숨겨져 있기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매력을 어필해야 합니다. 그 점에서 가장 매력적인 작가는, 바로 이 남자입니다. 상어를 박제해 전시한(2005) 데미안 허스트죠. 박제상어를 통해 데미안 허스트는 마케팅의 대가라 불렸습니다. 작품을 통해 매스컴과 대중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반응하게 만들었죠. 덕분에 허스트는 이전에 신비주의 마케팅, 스타 마케팅으로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앤디 워홀보다도 훨씬 더 뛰어나다 여겨지는데요. 일찍이 주목받은 허스트의 기량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마케터'가 아닌, '사업가'로서의 면모죠.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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