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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셀프 브랜딩

목숨 걸고 예술하는 퍼포먼스계 할머니 |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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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oto by Andrew Russeth

올해 77세, 1946년 생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자신을 퍼포먼스계 할머니라 부릅니다. 새빨간 원피스 차림으로 관객을 빤히 응시하는 이 작업 <예술가가 여기 있다>가 그의 대표작인데요. 사실 마리나의 작업은 굉장히 과격합니다. 칼로 손가락 사이를 쉴 새 없이 내리치는 작업을 선보이거나, 관객이 도끼와 총으로 자신을 공격하게 하거나, 공업용 선풍기를 기절할 때까지 쐬는 등. 과격한 행위예술의 선도주자로서 충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였죠.

 

마리나가 이렇게 수위 높은 퍼포먼스를 선보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표현하기 위함이죠.

 

 

피와 눈물로 만들어낸 퍼포먼스 아트

© Photo by Dian Lofton / Ted

마리나의 대표작, <예술가가 여기 있다>는 2010년 뉴욕을 가장 뜨겁게 만든 작품입니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단호한 무표정으로 관객과 마주하고 있죠. 작가를 마주한 관객은 몇 분이든, 몇 시간이든 그들이 원하는 만큼 앉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그저 관객을 가만히 바라봤죠. 싸움할 때 빤히 쳐다보면 싸움이 시작되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작가의 침묵과 응시를 도발적이라고 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평온함을 느끼기도 했고요. 종종 우는 관객도 있었어요. 이해받는 느낌이 든다는 이유도 있었고, 예술가와 무언의 소통을 하며 깊이 공감한다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이 퍼포먼스에서 흰색, 빨강, 남색의 드레스를 입었다  © marina abramović archive
아브라모비치를 바라보는 관객의 다양한 표정 © marina abramović archive

3개월간 진행된 전시(2010. 3. 14- 5. 31)에는 50만 명의 관객이 방문했고, 의자에 앉아서 아브라모비치의 눈을 본 관객은 1675명이었어요. 아브라모비치가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관객을 바라본 시간은 736시간 30분. 이 작품은 평생 퍼포먼스 아트만 해온 아브라모비치의 작품 중 가장 긴 시간 동안 진행된 겁니다. 작가의 힘과 체력, 인내력의 한계를 실험하기 위해 기획된 건데요. 여러분은 이 의도, 공감 가시나요?

 

처음 작품 기획을 들은 모마의 큐레이터는 ‘가만히 앉아 눈을 쳐다보는 것이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겠냐’며 확신하지 못했다고 해요. 하지만 작품을 체험한 관객은 감정적으로 압도적인 경험이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심지어 ‘마리나의 눈빛으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의 모임’이 만들어지기도 했고요.

 

다큐멘터리 <예술가가 여기 있다>의 한 장면 © The Artist is Present

아브라모비치는 퍼포먼스 작업을 통해 인간의 연약함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의도적으로 자신의 몸의 한계를 시험하죠. <예술가가 여기 있다>는 하루에 여덟 시간씩 관객을 응시하는 작업이었어요. 첫 주가 지나서부터 작가는 극심한 고통 느끼기 시작합니다. 어깨는 축 처지고, 다리는 붓고, 늑골은 힘없이 안으로 말려들어갔죠.

 

정신적인 고통도 컸어요.  퍼포먼스를 하는 동안 개처럼 후각이 예민해지는 때가 있었고, 몸으로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처럼 360도 시야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감각 기관이 극도로 예민해진 것이죠. 이처럼 자신의 몸을 재료 삼아 선보이는 퍼포먼스 아트는 예술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기도 합니다.

 

rhythm 10 (1973) © marina abramović archive
rhythm 4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하지만 이 작품은 아브라모비치의 초기작에 비하면 순한 맛이에요. 그의 초기작, ‘리듬 시리즈’는 피와 눈물이 흥건한 작품이었습니다. <리듬 10>은 자신의 왼손을 활짝 펴 그 사이를 칼로 찍는 위험한 행위를 선보이는 작품이에요. 이를 지켜보는 관객은 불안에 떨게되는데, 더 극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일부러 칼로 손을 찍기도 했다고 해요.

 

또 이듬해 선보인 <리듬 4>는 알몸으로 기절할 때까지 얼굴에 산업용 선풍기를 쐤고요.

 

rhythm 0 (1974) © marina abramović archive / © Sotheby's

리듬 시리즈의 가장 마지막이자 가장 극단적이었던 작품은 <리듬 0>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아브라모비치가 테이블 앞에 서서 관객의 행위를 받아내는 작업인데요. 관객은 테이블 위에 있는 도구로 예술가에게 무엇이든 해도 됐습니다. 테이블 위엔 음식, 칼, 꿀, 장전된 총, 장미 등 72개의 도구가 있었는데요. 6시간 동안 진행된 퍼포먼스는 아브라모비치가 피와 눈물범벅의 나체로 실려나가며 끝납니다. 후에 아브라모비치는 이때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고 언급했고, 이튿날 머리카락 한 줌이 새하얗게 변해있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퍼포먼스 아트: 가장 단순하고 진실된 예술의 여정

© Sotheby's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을 재료삼는 아브라모비치. 그의 작업은 너무 과격해 혐오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리나는 과격한 작품을 선보인 대가를 혹독히 치렀죠. 식인종이라거나, 악마숭배자라는 괴담이 돌기도 했고, 살해 협박이나 사생활 폭로 등 협박을 받는 일도 많았습니다. 미술씬 내부의 비난여론도 있었어요. 평론가와 동료 예술가들은 마리나의 작업이 역겨운 것이라 비난하기도 했고, 마리나의 조국 세르비아에서는 ‘그의 작품은 예술이 아닌 헛소리’라 비난했죠. 심지어 가장 가까운 가족들도 마리나가 정신병원에 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브라모비치가 행위예술을 하는 이유가 있어요: “대중은 관음증적이지 않은 경험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기존의 ‘수동적’인 작품 ‘감상’이 아닌, ‘주체적’으로 작품을 ‘주도’하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죠. 관객 참여는 지금까지도 아브라모비치 작품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로 작동해요.

 

Rest/Energy (1980) © marina abramović archive

이 때문에, 마리나의 작업은 매우 단순한 구조로 기획되어 있습니다. 미술에 대한 기반지식이 아예 없어도 이해 가능하죠. 대표적인 것이 오랜 연인, 울라이와 함께한 작업들입니다. 이들이 함께한 작업의 주제는 ‘관계’였어요. 이 작품, <정지/에너지 Rest/Energy 1980>는 그들의 대표작으로 꼽힙니다. 이 작품에서 그들은 서로의 몸무게로 균형을 유지하며 활과 화살을 당겨 화살이 심장으로 날아가는 걸 막아요. 팽팽한 긴장감 속, 신뢰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죠. 이들은 이렇게 신체를 재료 삼고, 관계를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는데요.

 

1988년, 이들은 12년간의 연인이자 예술적 동반자 관계를 끝내기로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을 선보이죠. 만리장성에서 진행된 <The Great Wall Walk 1988>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만리장성의 한쪽 끝인 황해에서 출발하고, 울라이는 나머지 한쪽 끝인 고비사막에서 출발합니다. 각자 2400킬로미터를 걸었고 마지막에 서로 만났을 때 인사하고 헤어졌죠. 처음 이 작품을 계획했을 땐 중간에서 만나 결혼하려 했지만, 중국 당국의 허가가 늦어지게 되었어요. 이윽고 8년 뒤 허가가 났을 땐, 이들은 이미 헤어지기로 한 상태였죠. 하지만 이들은 작품을 수행하기로 하고, 헤어지는 모습을 연출합니다. 이 작품 역시 매우 단순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들의 작품 주제인 ‘관계’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질문을 제시해요. 

 

AAA~AAA (1978) © marina abramović archive

이게 가능한 이유는, 이 퍼포먼스가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모비치는 연극과 퍼포먼스를 비교해 이야기했어요. “연극은 인위적입니다. 피가 피가 아니고 칼이 칼이 아니죠. 하지만 퍼포먼스는 진짜 현실에 관한 거예요.”

 

예술가가 철저히 짠 판 안에서 작품이 진행되지만, 퍼포먼스 아트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든 게 진짜입니다. 때로는 관객 참여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하고요. 이 모든 상황을 감수하고 수행해 낸 아브라모비치는 많은 관객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었고, 오늘날 가장 성공적인 퍼포먼스 예술가로 불립니다.

 

 

상업성과 거리가 먼, 행위예술의 미학

Portrait with Lamb (2010) / Portrait with Firewood (2009) © marina abramović archive

아브라모비치는 그 유명세에 비해 많은 돈을 벌진 못했습니다. 퍼포먼스는 연극처럼 가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에, 예술가의 몸에 진짜 상처를 내고 고통을 안겨요. 반복적으로 진행하기도 어렵고 판매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모비치는 다른 예술가처럼 작품을 팔아 돈을 벌 수 없었어요. 작가 데뷔 후 20년 넘게 전속 갤러리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 크고 작은 행사에서 강의를 진행하거나, 예술 대학의 교수로 활동하고, 사진 작품을 판매하며 생계를 유지했어요.

 

마리나의 가장 인기 있는 사진 작품은 초상화 시리즈에요. <Portrait with Firewood (2010)>이 작품은 먼 미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술가의 상황을 연출한 것인데요. 이 초상화 시리즈는 퍼포먼스 아트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작품의 주제를 경험하게 하죠. 아브라모비치는 이전에 "좋은 예술작품은 여러분을 돌아보게 합니다. 식당에 앉아있는데 누군가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돌려보면, 실제로 쳐다보는 사람이 있을 때가 있어요. 좋은 작품에는 그런 에너지가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 바 있어요. 그리고 이 사진 작업을 들어, “실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정적인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획득한 것”이라고 언급했죠.

 

Portrait with Potatoes (2008) © marina abramović archive

마리나의 사진 작품은 10점 이하로만 제작됩니다. 여러 점을 제작하지 않는 이유는, “반복이 자신에 대한 존중심을 잃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해요. 아브라모비치는 미술가들이 그들의 대표작이나 ‘시그니처 표현’으로 유명해지지만, 대부분 거기에 갇히게 된다고 봤습니다. 실제로 시장에서 자주 거래되는 유명 작가 중에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캐릭터나, 도상, 색깔, 표현 방식 등이 있죠. 종종 이것에 갇히게 되는 예술가도 있고, 이것 하나로 계속 돈을 버는 작가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마련한 작업실 공간과 조수, 직원에 대한 간접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매번 같은 걸 반복한다고 이야기해요. 하지만 아브라모비치는 이렇게 반박합니다. “저는 작업실이 과잉생산과 자기 자신을 반복하는 덫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곧 미술 공해로 가는 습관성 중독이죠.” 그리고 상업화된 미술시장에서 본질적인 예술에 집중하며 계속 새로운 예술을 좇고 있어요.

 

그 일환으로 그는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인스티튜트 MAI>를 설립했습니다. 모든 분야의 예술가들이 협업하면서 새로운 가능성을 창출하는 장을 만들기 위함인데요. 동시에 퍼포먼스 아트의 선구자로서 행위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해, 아브라모비치의 작업을 직접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합니다. 웹사이트에서는 그의 공식 작업영상을 감상할 수 있기도 하고, 직접 작품 해설 영상을 촬영해 제공하기도 해요.

 

50년 넘는 퍼포먼스 아트 경력을 가진 아브라모비치. 그는 이제 더 이상 퍼포먼스계 할머니로 불리길 원치 않습니다. 자신이 붙인 별명임에도 말이죠. 그 단어가 어딘가 은퇴를 염두에 둔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해요. 그 번복처럼, 지금도 계속 새로운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순간에만 존재하지만, 그렇기에 더 예술적으로 빛나는 퍼포먼스 아트, 그 대가의 자리에 오른 아브라모비치의 예술세계. 여러분은 어떤 걸 느끼셨나요?

 


자료 출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 그레이슨 페리, 원더박스 (2019)

예술가의 뒷모습, 세라 손튼, 세미콜론 (2016)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경계의 신체, 박미성, 현대미술사 연구, 현대미술사학회 (2014)

예술가는 그곳에 없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The Cleaner, 김영인, 미술세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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