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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셀프 브랜딩

예술가는 늙어도 작품은 늙지 않는다. 가장 트렌디한 80대 예술가: 데이비드 호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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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Portrait of an Artist (Pool with Two Figures), 1972

 

오늘날 호크니 작품 중, 가장 비싸게 팔린 건 <예술가의 초상>입니다. 이 작품은 1972년, 호크니의 나이 35살 때 그려졌어요. 그리고 2018년 경매에서 1019억 원에 낙찰되었죠. 당시 생존 작가 작품 중 가장 비싼 작품이었고, 오늘날엔 두 번째로 비싼 작품입니다.

 

데이비드 호크니, 30대에 이룬 전성기

작품은 로스앤젤레스의 주택 안, 수영장 풍경을 그려냈는데요. 호크니 특유의 아름다운 색감이 로스앤젤레스의 화창한 날씨와 맞아떨어지며, 매우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어요. 이 시기 만들어진 작품이 호크니의 전성기이자, 대표 작품으로 불리죠.

 

영국에서 나고 자란 호크니가 로스앤젤레스로 간 건 서른살 때. 이유는 딱히 없었다고 해요. 아는 사람도 없었고요. 그저 ‘태양이 나를 로스앤젤레스로 이끈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호크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두 가지에 놀랐다고 해요. 첫째로, 날씨가 너무 좋다는 점, 둘째로, 집집마다 수영장이 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이점에 매료되어 아름다운 날씨를 품은 수영장을 그려내곤 했어요.

 

David Hockney, A Bigger Splash, 1967 / David Hockney, Picture of a Hollywood Swimming Pool, 1964

 

그중 호크니가 가장 공들인 요소는 '물'의 표현이었습니다. 호크니가 그린 수영장을 보면, 물의 표현이 매우 독특한 걸 볼 수 있어요.

때로는 추상적인 선으로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면으로 단순하게 처리하기도 하죠. 수면은 매우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물 위에 보이는 패턴은 그리기 까다로워요. 

 

호크니는 수면이 유리와 비슷하다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보고있는 지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둘은 비슷하죠. 유리를 볼때, 우리는 유리 표면을 보는 것인지 유리 너머 있는 걸 보는 것인지 명확히 알 수 없습니다. 수면도 마찬가지고요.

 

'눈으로 보이는 것을 어떻게 정확히 그림에 옮길 것인가'. 이는 호크니에게 가장 중요하고, 또 흥미로운 챌린지였어요. 

 

 

미술계 분노를 산 호크니의 주장, '명화의 비밀'

David Hockney, Secret Knowledge (2001)

 

이 일환으로 호크니는 2001년 책을 냅니다. 카라바조, 벨라스케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등 과거 대가들이 어떤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는지

직접 분석하고 따라 그리며 연구한 <명화의 비밀>이죠. 이 책은 미술계에 엄청난 충격과 반발을 샀어요. 엄청난 두께와 분량을 자랑하는 책에서 호크니가 말하는 것은 딱 한 가지였습니다. "과거 대가들은 거울과 렌즈를 사용해 작품을 그렸다는 것".

 

이미 1500년대부터 화가들은 렌즈를 통해 사물과 대상의 이미지를 2차원 평면에 투영한 다음, 그 형상을 따라 그리는 방식 활용하곤 했습니다. 덕분에 그림이 생생하고 정밀하게 그려질 수 있었죠. 이 방식은 마치 과거 대가들이 반칙을 썼다는 것처럼 들려 많은 반발을 샀는데요. 놀랍게도 이건 진실입니다. 호크니 이전에도 이 사실을 주장한 학자들이 있었죠.

 

호크니는 책에서 이 주장들을 정리합니다. 매우 명확하고 간결한 근거들로요. 당시 화가들과 거울 제조업자들은 같은 길드에 속해있었다고 해요. 덕분에 화가들이 거울을 활용하기 아주 좋은 환경이었죠. 또 당시 그림을 보면 거울을 활용해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 속 원근법이 조금씩 어긋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Robert Campin, Portrait of a Man, 1435 / Masolino, Cristo in pietà, 1424

거울로 비춰서 볼 수 있는 영역은 아주 작고, 부분 부분을 봐야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 렌즈의 위치가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그렇게 오차가 생기는 것이죠. 또 이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려면 강한 빛의 대비가 필요한데요. 호크니는 이점 때문에 카라바조처럼, 극적인 빛이 표현된 그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같은 시기 그려진 그림이라도 거울을 활용한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의 사례를 제시하면서 그 근거를 명확히 하죠.

 

실제로 카라바조 처럼 빛의 대비가 강렬한 작가들은 본인의 그림 안에 거울과 렌즈 등을 소품으로 사용하며 가까이 두고 작업했음을 보여줘요. 이 사실은 작품에 대한 환상을 깨기도 합니다. 하지만 호크니는 그 환상을 깨기 위해 이 내용을 집필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예술은 기술을 활용할 때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죠. 

 

그러면서 직접 렌즈를 활용해 과거 방식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실험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를 통해 호크니는 거울과 렌즈를 활용한 광학적 그리기 기술이 본인의 작품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거울과 렌즈를 활용한 광학적 기술, 이는 오늘날의 카메라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카메라 기술을 작품에 활용하다

David Hockney  © CNN

하지만 카메라에는 명확한 장단점이 있었어요. 장점은, 1초 남짓한 짧은 시간에 대상을 정확하게 포착한다는 것. 단점은, 카메라가 대상을 보는 방식이 우리 인간이 보는 방식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

 

호크니에 따르면, 인간이 대상을 인식하는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바로 '시선'과 '시간'이죠. 우리의 시선은 언뜻 넓어보이지만, 사실은 대상의 일부분만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조금씩 초점을 옮겨가며 대상을 인식하죠. 이 때문에 시선과 시간이 필요한 거예요.

 

The Crossword Puzzle, Minneapolis, Jan (1983) © David Hockney

 

하지만 카메라는 한 가지 시점만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호크니는 카메라의 시선에 시간을 더하기로 해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The Crossword Puzzle, Minneapolis, Jan (1983)>입니다. 이 작품은 호크니의 친구 부부가 십자말 맞추기를 하는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단어를 맞추며 신나 하는 모습, 쓸 준비를 마치고 확신하는 모습, 마침내 써 내려가는 모습 등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을 담아냈어요.

 

이렇게 시간의 흐름을 활용해 다양한 표정을 보여줌으로써 생동감을 자아내는 사진이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호크니는 이 작품을 통해 사진으로 회화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고 해요.

 

Pearblossom Hwy. 11-18th April 1986 (second Version) © David Hockney

 

이후 탄생한 <Pearblossom Hwy. 11-18th April 1986 (second Version)>. 이 작품은 열흘간 800장가량 사진을 찍어 도로의 풍경을 재현한 작품이에요. 언뜻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소실점이 보이는 것 같지만, 단 한 장도 소실점에 맞춰서 촬영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모두 인간이 대상을 보는 것처럼 다양한 시점에서 촬영했죠. 길을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사방을 둘러보듯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한 사진은 실제 눈으로 보는 것과 비슷한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호크니는 이를 카메라로 그리는 드로잉이라고 명명했어요. 마치 드로잉을 할 때처럼 시점을 옮겨가며 대상을 포착하기 때문이죠. 인간의 눈이 시점과 시간에 따라 대상을 입체적으로 본다는 걸 사진으로 보여준 매우 의미 있는 작품입니다. 

 

기술을 예술에 접목시킨 호크니의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이후 호크니는 카메라보다 더 최신의 기술을 활용하기로 해요. 아이폰의 그리기 기능을 활용해 새로운 방식의 회화를 탄생시킨 것이죠. 

 

 

디지털과 회화의 결합, 아이패드 드로잉

© David Hockney Foundation

 

2009년, 호크니는 아이폰 드로잉을 작품으로 선보여요. 작은 화면을 꽉 채운 그림은 그의 엄지 손가락으로 그려진 것이었죠. 이후 아이패드가 등장한 이후부터는 줄곧 아이패드 드로잉을 선보여왔는데요.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호크니 작업의 본질이 담겨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어떻게 평면에 옮길 것인가'. 시각적 혼란을 주는 유리나 수면을 끊임없이 그리고, 카메라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 더 큰 풍경을 그려내며

계속 그 시도를 이어갔죠.

 

또 아이패드는 호크니가 더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돕기도 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걸 평면에 정확하게 옮기기 위해 호크니는 아예 캔버스와 물감을 들고 야외로 나가 그리거나, 수백 장씩 사진을 찍어오는 등 수고를 감행했었습니다. 대상이 잘 보이는 시간대에 맞추기 위해

그림들은 대부분 낮 시간대의 풍경을 그려냈고요.

 

© The Independent

 

아이패드는 이런 번거로움도 필요 없었고, 밤에도, 저녁에도 얼마든 그릴 수 있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작업의 시공간적 제약을 제거하고

예술의 범주를 더 확장할 수 있었던 것이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의 창의력이 억제된다거나, 혹은 기술에 빼앗길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티브이가 바보상자라고 불리고, AI가 예술가의 자리를 위협한다는 말처럼요.

 

하지만 호크니는 새로운 기술이 오히려 예술가의 예술세계를 더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냅니다. 그리고 이는 미디어 아트로 이어졌죠.

 

 

어쩌면 호크니 인생 마지막 대작, 미디어 아트

© CNN

 

2023년, 호크니는 생존 작가 최초로 미디어 아트 전시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는 사진이나 아이패드보다 더 큰 장애물이 있었어요. 바로, 기존 미술계의 인식이죠.

 

미디어 아트에 대한 기존 미술계 인식은 썩 좋은 편이 아니었어요. 작고한 거장의 작품을 영상으로 구현하는데 지나지 않으며, 상업성에 초점을 맞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전통적인 작품 감상 방식과 달리 관객이 온전히 사유하기도 쉽지 않다는 것도 이유였고요. 

 

그럼에도 호크니는 기꺼이 이 기술을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변화는 시작되었고, 이제는 페인트와 캔버스를 벗어나, 몰입감 넘치게 변화하는 디스플레이로 작품을 보는데 익숙해져야 할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었는데요.

 

© Light Room

 

인간이 대상을 바라볼 때 시점과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이 미디어 아트에서는 호크니 작품을 시점과 시간을 들여 선보입니다. 전시에 활용된 호크니의 내레이션에서 이를 볼 수 있죠. 미디어 아트가 상영되는 한 시간 동안 나오는 내레이션은 다큐를 위해 따로 작성한 게 아닌, 호크니의 인터뷰를 일부 발췌해 얹은 거예요. 이 인터뷰는 1964년 것도 있고, 1978년, 그리고 2022년 등 다양합니다. 시기가 매우 다른 덕분에 다양한 시점과 시간에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죠.

 

놀라운 건, 시간상 40년 넘게 차이나는 인터뷰에서도 호크니 작품의 핵심 아이디어는 늘 일관적이라는 겁니다. '눈으로 본 대상을 어떻게 정확히 캔버스에 옮길 것인가'. 어린 나이에도, 시간이 지나 고령작가가 된 오늘날에도 호크니가 예술가로서 규정한 작업의 본질은 명확했습니다. 그렇게 미디어 아트에 시점과 시간을 담은 호크니는 이 미디어 아트가 전시가 아닌, 본인의 새로운 작품이라 소개했죠.

 

© David Hockney Foundation

 

87세가 된 지금, 이것이 호크니의 마지막 대작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이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호크니는 미디어 아트 작품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또 떠올랐다면서, 여전히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언급했는데요.

 

기술을 예술의 도구로 적극 활용하며, 발전하는 기술을 빠르게 작품에 활용한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시도는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오늘날의 젊은 예술가들이 본인의 작업을 통해 새로운 힌트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는데요. 여러분은 호크니의 작업을 통해 어떤 인사이트를 얻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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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3R7By7rZc_Y?si=ITooDISf8U9RIyx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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