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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셀프 브랜딩

오타쿠를 동경한 엘리트 예술가: 무라카미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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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다카시, KaiKai KiKi and Me: And Flower Smile (2008) © Sotheby's

무라카미 다카시 (Murakami Takashi, 1962~)는 오타쿠 문화를 순수예술로 끌고 온 예술가입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전형적인 오타쿠 문화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죠. 통통 튀는 이미지 속, 귀여운 캐릭터들의 모습. 작은 크기의 피규어를 사람 크기로 키운 작업들. 이들은 전형적인 오타쿠 문화를 무라카미가 본인만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결과입니다. 

 

이런 오타쿠스러운 작품들로 무라카미는 막대한 부와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의 작품은 경매에서 193억 원에 낙찰되었고, 대중을 대상으로 작품을 팔기 위해 회사도 설립했죠. 그가 주창한 이론은 미술사에 기록되었습니다. 예술가로서 이룰 수 있는 모든 커리어는 다 선보였죠.

 

본인 작품 앞의 무라카미 다카시 © Chicago Magazine

무라카미는 자신의 노하우를 거리낌 없이 전하는 예술가입니다. 2006년, 그는 <예술기업론>을 출판해 '예술을 기업처럼 운용하는 방법'에 대해 설파합니다. 이 책에서 그가 전한 골자는 크게 세 가지예요. ① 기존 서구 미술의 작동 방식을 공부하고, 이해해야 함 ② 예술은 결국 상상력을 가지고 벌이는 장사라는 걸 인정해야 함 ③ 오락에 마비된 현대인의 감성을 뒤흔들 수 있는, 한 방을 터트리는 작업을 내놓아야 함.

 

무라카미는 예술을 업으로 삼기 위해 철저히 사업적으로 예술에 접근했습니다. 무라카미의 성공방식, 대표작과 함께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오타쿠 문화의 꽃, 피규어를 예술작품으로 만들다 (1997년)

왼쪽부터 My Lonesome Cowboy (1998), ZuZaZaZaZaZa (1999), Hiropon (1997)&nbsp; &copy; HELL&

그의 대표작 <히로폰>과 <My Lonesome Cowboy>는 그 시작을 알리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의 시작은 무라카미가 1993년, 서른한 살이 되던 해로 거슬러 올라가요. 당시 무라카미는 아시아 문화위원회의 기금으로 2년간 뉴욕 유학길에 올랐는데요. 이때 무라마키는 페로탕 갤러리의 엠마뉴엘 페로탕 등 뉴욕 미술계 탑 갤러리스트들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에게서 좋은 인사이트를 얻죠. 

 

무라카미는 일본의 색깔을 드러내면서도,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일본의 순수 예술이 서구에 너무 많이 종속되어있고, 어떤 작품을 선보여도 서양의 아류작 정도로 치부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무라카미는 '진짜' 일본적인 색깔이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 뉴욕에서 답을 찾습니다. 서브컬쳐라 불리는 오타쿠 문화였죠. 

 

오타쿠 문화는 일단 상업성이 보장되어 있었습니다. 1990년도 후반 추산된 일본 오타쿠 문화의 시장 규모는 약 4100억 엔, 한화 약 4조 원 규모였습니다. 이미 순수예술보다 더 많은 팬덤, 더 큰 시장규모를 자랑하고 있었죠. 게다가 이런 서브컬쳐 감성은 이미 미국에서 성공사례가 있었습니다. 1960년대 앤디워홀을 필두로 한 팝아트, 이후 1980년대 제프 쿤스가 선보인 네오팝은 모두 만화적 감성을 가지고 있었죠.

 

무라카미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일본의 오타쿠 문화야말로, 팝아트와 네오팝의 뒤를 이을 콘텐츠이자,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에만 존재하는, 이른바 일본다움 Japanese-ness의 확실한 원천이고, 전대미문의 새로움으로 충격을 줄 수 있는 고유한 자산이라고요. 

 

본인이 재해석한 도라에몽 작품 앞, 무라카미 다카시의 모습&nbsp; &copy; VOGUE India

무라카미는 오타쿠 문화의 '모에' 요소를 적절히 고르고 섞어 작품을 창작합니다. '모에'란, '소비자의 특정 관심을 촉발시키기 위해 만든 캐릭터의 특징'을 의미하는데요. 모에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맥락을 가지고 형성됩니다. 그리고 오타쿠 문화에선 이런 모에 요소들로 구성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형성되어 있죠. 

 

이러한 모에 데이터베이스는 반복적으로 재해석되며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냅니다. 어딘지 일본의 캐릭터들이 비슷비슷해보이는 이유가 이 모에 데이터베이스 기반의 창작 방식 때문인데요. 무라카미는 본인의 작품에서도 이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내놓은 것이 그의 대표작, <Hiropon>, 그리고 <My Lonesome Cowboy>죠. 

 

Hiropon (1997)과 My Lonesome Cowboy (1998) © Art and Object

이 두 작품은 오타쿠 문화의 꽃, 피규어에서 볼 수 있는 모에 요소를 따왔습니다. 보통 피규어에서는 캐릭터 신체에 대해 성적인 묘사를 하기 마련인데요. 무라카미는 이 요소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재해석합니다. 히로폰은 가슴에서 뿜어낸 체액으로 줄넘기를 하고 있고, 카우보이는 성기에서 나온 체액을 밧줄처럼 다루고 있죠. 

 

또 무라카미는 기존 피규어에서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크기도 변형했습니다. 통상 피규어는 실제 인간의 1/5 크기나 그 이하로 작게 만들어지곤 하는데요. 무라카미는 이를 실제 사람 크기로 확대해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피규어 작업을 처음 접한 관객은, 익숙하면서도 기괴한 느낌을 받게 되죠. 

 

작품이 등장하고 사람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놓습니다. 먼저 등장한 <Hiropon> 작품은 일본의 버블 경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평이 나왔는데요.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가슴은 일본의 거품경제에서 거품이 빠져나가는 상황이며, 이런 상황에 어쩔 수 없이 춤추듯 줄넘기하는 일본의 무능함을 지적했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일본의 사회적 상황도 함께 작품에 담아냈다는 시각이었죠. 작품은 만들어지고 5년 뒤, 크리스티 경매에서 427,500 달러(한화 약 5억 5천만 원)에 낙찰됩니다.

 

<My Lonesome Cowboy>는 더 놀라운 가격에 낙찰되었습니다. 2008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516만 달러 (한화 약 158억 원)에 낙찰되었죠. 누구도 이 정도의 가격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의 로버트슨 Ian Robertson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무라카미의 작품은 주식으로 치면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대표주입니다. 시장은 그가 제 2의 앤디 워홀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미래 가치가 가격에 반영된 것이죠. 명성은 가치로 직결됩니다."

 

옆에서 본 <Hiropon>의 모습 &copy; Mon Dieu

하나의 작품이 경매시장에서 성과를 내면, 작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집니다. 이 사건은 무라카미 다카시의 예술적, 상업적 가치를 가격으로 입증해 냈는데요. 이를 통해 무라카미는 일본의 현대미술 대표주자를 넘어, 세계적 스타로 거듭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둬야할 게 있습니다. 작품이 만들어지고 이렇게나 높은 금액에 낙찰되기까지, 약 5~6년의 텀이 있었다는 것.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무라카미의 작품 가격이 수백억 원을 호가하게 된 걸까요? 2000년부터 3년 텀으로 무라카미는 이슈를 만들어냅니다. 

 

 

작품 가격을 끌어올리기 위해 사조를 만들다 (2000년)

Murakami Takashi, 727 (1996) &copy; MoMA

무라카미는 도쿄예술대학에서 일본화를 전공했습니다. 그리고 일본화로 박사학위까지 받았죠. 초기엔 일본 전통화를 많이 그려냈지만, '보다 일본적인 것'을 찾는 과정에서 오타쿠 문화의 모에 요소를 따와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가장 일본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서', 그리고 '서브컬쳐의 성공사례가 미국과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였죠. 하지만 이건 상업적이고 전략적인 이유였습니다. 좀 더 미술적이고 근사한 이유가 필요했죠. 이에 무라카미는 순수예술인 일본 전통화부터 서브컬쳐인 오타쿠 문화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새로운 사조를 만듭니다. 바로, '수퍼플랫 Super Flat'이었죠. 

 

수퍼플랫은 고급 문화와 저급 문화,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 간에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오히려 강력한 공통점이 있다 말하죠. 바로 '평면성'입니다. 일본 전통화도, 만화도, 애니메이션도 모두 평면성을 강조한 그림입니다. 대상의 외곽선을 진하게 따 평면성이 두드러지죠. 무라카미는 이 이론을 통해 일본 전통화에서 오타쿠 문화로 넘어온 작품 전개 과정에 설득력을 더합니다. 

 

그리고 수퍼플랫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업이 바로 <727>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일본 전통회화 느낌을 내는 배경과 구름이 보입니다. 그리고 구름에 캐릭터가 올라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고요. 마치 현대 캐릭터가 과거에서 넘어온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별 다른 맥락은 없습니다. 하지만 무라카미의 수퍼플랫 개념은 작품에 맥락을 더해줍니다. 일본 전통 회화의 요소와, 만화로 이어진 최근의 흐름 간 연결고리를 찾아낸 사조이기 때문이죠. 

 

무라카미의 첫번째 캐릭터이자, 본인을 본따 만든 캐릭터 도브 (DOB) &copy; DNA Gallery

수퍼플랫 개념이 본인 작업에 미술사적 설득을 더해주자, 무라카미는 작업에 디테일을 더해가기 시작합니다. 일본 전통화는 과거의 산물이고 이미 많은 연구가 진행되어 바꿀 수 있는 게 많지 않기에, 오타쿠 문화를 기반으로 변주를 이어갔죠. 무라카미는 1993년에 자신의 캐릭터 도브를 만듭니다. 도브는 무라카미가 본인을 본떠 만든 캐릭터인데요. 기존 캐릭터의 모에 요소를 따와 만들어졌습니다. 둥근 두 개의 귀는 미키마우스에서, 모자를 뒤집어쓴듯한 모습은 도라에몽에서, 푸른 색깔은 일본 캐릭터 소닉에서 따온 것이죠. 

 

이 캐릭터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있지는 않습니다. 그저 작품에 오타쿠적인, 팝적인 요소를 더하는 장치로 작동하죠. 단순 시각적 요소이지만 무라카미는 눈을 여러 개 달거나, 입을 벌리게 하거나, 색깔을 바꾸는 등 도상의 디테일을 달리하며 컬렉터의 소장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수퍼플랫 개념 덕에 미술사적 가치도 획득하고, 오타쿠 문화 특유의 모에 데이터베이스 기반 캐릭터도 만들어 시장에서 팔릴만한 작가로 등극하게 된 것이죠.

 

무라카미가 세운 회사, 카이카이 키키 &copy; KaiKai Kiki co.

수퍼플랫 개념은 사업화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까지 아우르는 사조였기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도 창출이 가능한 덕분이었죠. 회화 작품 판매는 기본이고, 캐릭터를 새긴 노트, 티셔츠, 마우스 패드, 배지 등 상업성 짙은 굿즈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무라카미는 1996년 '히로폰 팩토리'라는 회사를 세워 작품의 제작부터 배달까지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히로폰 팩토리는 2001년, '카이카이 키키'라는 사명으로 바뀝니다. 사업규모 확장을 위한 무라카미의 포부가 담긴 이름이었죠. 일본에는 300년 넘는 시간 동안 명맥을 이어온 사조, '카노파'가 있었는데요. 카노파를 '기기괴괴하다'고 말한 한 일본 평론가의 말을 차용해 이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회사도 카노파처럼 300년 넘게 가는 회사가 되길 바란 마음에서였죠.

 

그리고 카이카이 키키의 대표로서, 무라카미는 본인의 예술적 입지를 확고히 할 수 있는 사업을 따내게 됩니다. 바로, 루이비통과의 협업이었습니다.

 

 

세계 최고 럭셔리 브랜드와 전략적 협업을 진행하다 (2003년)

(좌) 루이비통과의 협업을 위해 무라카미가 만든 캐릭터 ‘Panda’(우) 무라카미가 직접 디자인한 루이비통의 새로운 패턴 © Louis Vuitton

오늘날에는 많은 예술가가 루이비통과 협업을 진행하지만, 당시엔 그런 사례가 없었습니다. 무라마키가 루이비통과 협업한 최초의 예술가이기 때문이죠. 이 선택을 하는데에는 루이비통의 전략이 있었습니다. 당시 루이비통의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일본을 타겟팅하기 위한 것이었죠. 일본 출신 현대미술가 중 가장 핫했던 무라카미는 일본 매출 신장에 도움을 줄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또 무라카미가 선보이는 오타쿠 스타일의 작품은 젊은 고객을 유치하기에도 제격이었습니다. 밝은 색감과 귀여운 캐릭터는 루이비통의 명품, 럭셔리 이미지를 한결 가볍게 만들어줄 것이라 보였죠. 이 제안을 무라카미가 거절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상업적, 예술적 성공이 거의 보장된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당시 무라카미의 인지도나 인기는 지금에 미치지 못했지만, 루이비통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보수적이고 무거운 느낌의 루이비통 패턴은 무라카미에 의해 밝은 흰색으로 바뀌었고, 다양한 색상을 활용해 키덜트 풍의 젊은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협업해 만든 제품들은 출시 직후 뜨거운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 협업은 루이비통과 무라카미 모두에게 윈윈이었습니다. 루이비통은 젊은 감성의 라인을 선보이며 높은 매출을 기록할 수 있었고, 무라마키 다카시는 세계 최고 럭셔리 브랜드에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더 대중적인 작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죠.

 

(위) 무라카미와 협업한 라인의 핸드백들 (아래) 무라카미 전시장 2층에 들어선 루이비통 매장 모습 © New York Times

이후 루이비통은 2008년에 무라카미의 개인전이 진행되던 전시장 2층에 아예 루이비통 매장을 차리기도 했습니다. 아트샵 개념이 아닌, 실제 매장의 인테리어와 진열 방식을 그대로 사용해 매장에 온듯한 느낌을 고스란히 자아냈죠. 매장에서 이뤄지던 예술과 상품에 만남이 미술관까지 침범하게 된 겁니다. 흥미롭게도, 루이비통 매장의 미술관 침입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신선하다는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긍정적 평가를 낳았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무라카미는 작품이 상품으로 만들어지는 것을 다시 보게 됩니다. 예술의 상업성을 비판하기보다, 긍정적이고 유쾌한 반응이 많았기 때문이죠. 이후 무라카미는 카이카이 키키를 통해 일반 대중에게 본인 작품을 보급하기로 결정합니다.

 

 

대중을 위한 작품 활동, 혹은 마케팅 (2003년)

무라카미 다카시의 <Super Flat Museum> 피규어들 © Artsy

루이비통이라는 초 럭셔리 기업과 콜라보 후, 무라카미가 다음 협업 대상으로 택한 건 다름 아닌 '편의점'이었습니다. 더 많은 대중에게 닿기 위함이었죠. 무라카미는 <수퍼플랫 미술관>이라는 이름의 패키지를 만듭니다. 이 패키지 안에는 작은 피규어가 들어있는데요. 5개의 시리즈에 각 10개의 캐릭터가 있어 총 50 종의 피규어를 선보였습니다. 각 피규어는 일련번호가 있고, 3천 점만 생산했죠. 가격은 350엔(한화 약 3천 5백 원)으로 저렴했지만, 한정 수량이라는 점, 일련번호가 있다는 점, 작품에 대한 설명서도 동봉된다는 점 등이 컬렉터의 심리를 자극했습니다. 

 

<수퍼플랫 미술관>은 엄청난 인기를 끌게됩니다. 단돈 3천 원 정도에 무라카미의 한정판 작품을 살 수 있다는 건 큰 메리트였죠. 실제로 무라카미도 본인 작품을 사느니, 거저인 <수퍼플랫 미술관>을 사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무라카미의 피규어 작업은 약 5억 원 대에 판매되고 있었고요. 

 

록펠러 센터 앞의 <Tongari Kun>, 2003 © Flickr

같은 해 뉴욕에서는 무라카미의 작품 <Tongari Kun>이 대대적으로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높이 5미터가량의 거대한 이 조각은 뉴욕의 상징, 록펠러 센터 앞에서 전시되었는데요. 이 전시를 계기로 뉴욕 미술계에서 무라카미의 위상이 높아지게 됩니다. 루이비통과의 협업, 편의점 콜라보, 록펠러 센터 앞 야외 전시는 무라마키의 인지도와 명성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습니다. 이제 전 세계의 대중과 평단이 무라마키 하루키를 주목하게 된 것이죠.

 

 

본인의 성공 이유를 책으로 출간하다 (2006년)

무라카미 다카시의 책, <예술기업론>, 2006

❶ 10년에 걸친 시장조사

무라카미 다카시는 도쿄예술대학에서 박사 학위까지 받은 예술가입니다. 애초에 무라카미는 미술대학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었습니다. "일본의 미술대학은 생계를 꾸려나가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으며,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곳"이라고 말했죠. 그러면서도 학사(1986)와 석사(1988)를 거쳐 박사(1993)까지 받은 데에는 뚜렷한 목적과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미술의 세계에서 이뤄지는 규칙을 배우기 위함이었죠. 무라카미는 2006년 출간한 본인의 책, <예술기업론>에서 이토록 미술 공부를 오래 한 이유를 밝힙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려왔습니다. (라기보다는 누구나 그리지만요) 대학에서는 일본화를 배웠고, 어느 시점에서부터 순수예술의 세계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곳에서 판명한 것은, 순수예술의 세계에서는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게임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도에서 예법을 지키지 않는 행동이 부정당하는 것처럼, 서양 미술의 세계에서도 규칙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유는 수요가 없습니다. 불문율을 따르지 않는 독창성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자명합니다"

 

그가 말하는 정해진 규칙은 서양 미술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맥을 의미합니다. 일본을 뛰어넘어 서양 미술계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그 문맥을 분석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자신의 것을 선보이기 위해, 일종의 시장조사를 한 셈입니다. 무려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말이죠.

 

무라카미 다카시의 조각 작품 &copy; Highsnobiety

❷ 독창적인 아이템 선정

이후 무라카미는 시장조사 후, 본인 작품을 시장에 진입시키고 사업화하는 방법을 다룹니다. 그 내용은 사업가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경영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나만의 독창적인 아이템을 고르는 것. 그렇게 무라카미는 오타쿠 문화를 택했습니다. 

 

"저는 일본의 서브컬쳐를 순수예술로 끌어들이는 것으로 서양미술세계에서 새로운 게임을 제안해왔고, 하이아트와 로우아트의 경계를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서브컬쳐를 순수예술로 취급하는 즐거움을 제시한 것이, 새로운 해석으로 받아들여졌죠. 제 작업이 없었다면 서브컬쳐는 서브컬쳐인 채로 묵살되어 있었을 겁니다."

 

❸ 노골적인 상업성 추구

오타쿠 문화는 서양 미술사의 맥락에서도, 일본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기에도 적합했습니다. 이를 선택한 후에는 '카이카이 키키'를 통해 공격적으로 작품을 생산해 냈죠. 현재 카이카이 키키는 무라카미의 저작권 관리를 비롯해 전시, 작품 제작, 작품 판매, 굿즈 기획과 판매, 협업, 애니메이션 제작 등 많은 부분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직원만 200명이 넘죠. 이 덕에 무라카미는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고, 이 부를 기반으로 더 많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Hiropon &copy; The Japan Times

❹ 타깃을 저격하는 이론화 전략

앞서 살펴보았듯 무라카미는 자신의 작업에 명분을 더해줄 '수퍼 플랫'이론도 주창했습니다. 무라카미는 책에서 "예술을 구매하는 것은 부자이고 이들의 가치관을 파악해야 작품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부자들은 다양한 이유로 작품을 구매하지만 결국 명분이 중요합니다. 대외적으로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명분 말이죠. 이는 미술사적 가치에서 출발하고, 무라카미는 이를 뒷받침할 이론을 주창해 본인 작품의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❺ 활발한 협업으로 대중성 확보

미술시장은 구매시장뿐만 아니라 감상시장도 활성화된 분야입니다. 전시 등을 통해 더 많은 대중, 더 다양한 고객을 만나게 되죠. 무라카미는 이 시장도 놓치지 않고 대중성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협업을 진행했습니다. 루이비통과 협업뿐만 아니라, 편의점에서 선보인 <수퍼플랫 미술관>, <록펠러 센터 전시> 등이 그런 사례입니다. 록펠러 전시 이후 무라카미의 <My Lonesome Cowboy>는 158억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평단과 대중 모두가 알아주는 몇 안 되는 예술가가 된 덕분이었죠.

 

이처럼 무라카미의 예술기업론, 즉 '예술을 업으로 일으키는 이론’은 단순히 사업적 예술가를 위한 전략을 넘어선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성공전술입니다. 사람들은 그가 만들어낸 작품, 그의 이름이 들어간 작업을 갖고 싶어 하고, 유명 브랜드에서도 그의 브랜드화 가치를 활용하고자 합니다. 즉, 그만의 대중적인 요소로 상업미술과 고급예술 모두를 섭렵하여 브랜드화 전략에 성공한 셈이죠. 무라카미의 체계적이고 치밀한 성공 전략, 여러분은 어떻게 보시나요?

 


참고문헌

<미술과 디자인의 통합: 무라카미 다카시의 미술 상품과 욕망>, 진휘연, 미술사와 시각문화, 2008

<무라카미 다카시의 브랜드화 전략에 관한 연구: 양면적 가치와 욕망에의 도전> 주하영, Sutton Peter Anthony, 브랜드디자인학연구, 2014

<’수퍼플랫’론을 통해 바라본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과 오타쿠적 정체성: 작품 속 캐릭터와 <오백나한도>를 중심으로>, 조제휘

<무능현실 전능예술의 역설: 오타쿠 문화와 무라카미 다카시로 본 일본> 김민수, 일본비평, 2011

 

 

✍🏻 더 많은 예술가의 셀프 브랜딩 사례가 궁금하다면, <마우리치오 카텔란: 현대미술씬에서 가장 게으르고 부유한 작가>도 추천드려요. 이 글을 흥미롭게 읽으셨다면, 무라카미보다 앞서 미술계에 네오팝을 선보인 작가, <제프쿤스: 관종력과 실력으로 증대시킨 시장점유율>도 함께 보시길 제안드립니다. ☺︎︎Bidpie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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