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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셀프 브랜딩

백남준 ② 세계적 거장이지만 '헐값'에 팔리는 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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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1932-2006) © Roman Mensing

비디오 아트의 대가, 괴짜, B급 예술가, 백남준. 백남준은 실험을 멈추지 않던 예술가였습니다. 덕분에 음악부터 행위 음악, 비디오 아트, 인공위성 예술까지 다양한 예술을 선보였죠. 또 우리에게는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도 친숙한 예술가이기도 한데요. 올해, 백남준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다다익선>이 재가동되고, 그를 기리는 전시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사실 백남준은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인정받는 예술가였습니다. 독일에서는 일찍이 그의 예술성을 알아보고, 미술계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독일 대표 예술가로 백남준을 선정하기도 했죠. 당시 백남준이 금메달 격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살아있는 아시아 예술가 중에서는 최초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테이트 모던의 백남준 소장품 Bakelite Robot, 2002 © Nam June Paik Estate

지금도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는 백남준의 작품이 많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 구겐하임, 테이트 모던 등 다양하죠. 심지어 테이트 모던에는 백남준 전용관도 따로 있습니다. 보수적인 서양 미술관에서 백남준의 작품을 이렇게나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데요. 하지만, 백남준은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가는 아닙니다. 아래 표를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출처: Artsy, 최근 36개월 기준 (2022)

연간 작품 판매량도 매우 적은 편이고, 작품의 평균 가격도 다른 예술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걸 볼 수 있습니다. 경매 낙찰률은 평균 수준이지만, 최고 낙찰가도 10억 원이 안 되는 모습이죠. 백남준의 작품이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품과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술시장에서 잘 팔리는 건 대부분 회화 작품입니다. 이유는 단순해요. 공간을 덜 차지하고, 관리가 간편하며, 사고팔기 편리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백남준의 작업은, 대부분 조각 작품이거나 설치 작품입니다. 이런 작품은 컬렉터들에게 인기가 없습니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고, 회화 작품보다 관리가 어렵죠. 작품에 먼지가 쌓이거나 동선에 걸려 부딪히거나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고요. 또, 인테리어와 어울리는 조각을 구하기도 까다롭습니다.

 

테이트 모던의 백남준 소장품 Victrola, 2005 © Nam June Paik Estate
최근 재가동된 백남준의 '다다익선' © 국립현대미술관

게다가 백남준의 작품은 재료도 매우 까다로운 편입니다. 대부분 TV를 활용한 작품이 많은데요. 이럴 경우,  관리와 감상 모두 복잡해집니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TV 작동을 위해 선 연결이 필요하고, TV도 가동시간을 정해두는 등 다양한 유지 보수가 필요하죠. 

일례로 이번 9월에 재가동을 시작한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다다익선>은 2003년에 모니터 전면 교체가 이뤄졌는데요. 수리가 진행되었음에도 또 누전 현상이 일어나며 화재 위험으로 가동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수리를 모두 마친 채, 정상 가동되며 주 4회, 2시간씩 전시 중입니다.)

 

백남준 작품이 전시된 모습 © Cobo Social

비회화 작품 중에서도 매우 까다로운 작품인 백남준의 작업들. 때문에 미술시장에서는 투자 수익을 노리는 컬렉터들은 백남준의 작품을 굳이 구매하지 않습니다. 쉽게 거래할 수 있는 작품은 아니기 때문이죠. 오히려 작품성에 집중한 컬렉터들이 구매하거나, 마니아적 컬렉팅을 하는 이들이 주로 구매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기존 미술시장 타깃보다 훨씬 그 수가 적습니다. 이런 이유로 백남준의 작품은 판매량도 적고, 가격도 낮게 형성된 것이죠. 

백남준과 같은 시기 활동했고, 활동 당시 비슷한 유명세를 누린 중국인 예술가, 자오우키(Zao Wou ki)와 비교하면 이를 더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자오우키의 모습 © Artnet News

자오우키는 추상 작업을 선보이는 중국계 예술가입니다, 작품 사이즈를 대단히 크게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주로 화려한 색감의 풍경 같은 추상화를 선보이는데, 여기에 잉크를 더해 동양적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오늘날에는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구겐하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테이트 모던 등에서 자오우키의 작품을 소장 중이고요.  

백남준과 같은 시기 활동해 세계 시장에서는 아시아 예술가 양대 산맥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작품 가격은 백남준과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높은 편이에요. 작품 가격과 거래내역은 아래 표와 같습니다.

 

출처: Artsy, 최근 36개월 기준 (2022)

연간 작품 판매량도, 낙찰률도, 작품 평균 가격도, 최고 낙찰가도 모두 높게 형성되어 있죠. 물론, 이렇게 백남준과 가격차이가 날만 한 이유도 있습니다. 첫째로, 자오우키는 중국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한동안 중국은 자국 예술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중국 예술가들의 작품을 경매시장에서 비싼 가격에 구매했었는데요. 자오우키는 이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예술가입니다. 

또 2013년 세상을 떠나며, 한 번 더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사후 예술가들은 새로운 작품 제작이 불가능하기에, 대부분 가격이 오르곤 하는데요. 자오우키는 이미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작품을 많이 사들인 바 있어, 가격이 빠르게 폭등했습니다.

 

© ArtNet
© CGTN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회화와 비회화 작품의 특성이라 여겨집니다. 자오우키는 벽에 걸 수 있는 페인팅 작업을 주로 선보였고, 또 그 사이즈가 커 유명 호텔이나 회사의 건물에 들어갈 작품이 많았거든요. 넓은 공간에 놓인 자오우키의 작품은 엄청난 압도감을 줘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반면 백남준의 작품은 작품 자체의 압도감은 적은 편이죠. 조각/설치 작업의 단점도 모두 가지고 있고요.

 

이런 이유로 시장에서 매겨지는 두 예술가의 가치 평가는 상당히 갈리는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사적으로 더 큰 의의를 가지는 건 백남준입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예술을 제시했으니까요. 예술의 가치를 경제적으로 바라볼지, 학문적으로 바라볼지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지는 모습 역시, 예술 감상의 매력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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