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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예술사

뒤샹의 '샘'이 예술작품이 된 이유 | 개념미술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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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2월, 미술 전문가 500명이 설문에 참여합니다.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20세기 현대미술 작품은 무엇인가?”

 

후보로 나온 작품은,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앙리 마티스의 <붉은 아틀리에>,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두 폭>, 그리고 뒤샹의 <샘>이었죠.

 

쟁쟁한 작품 속 1위를 차지한 건, 다름 아닌 뒤샹의 <샘>이었음. 득표율 64%로 압도적이었죠. 뒤이어 2위엔 아비뇽의 처녀들, 3위에 마릴린 먼로 두 폭, 게르니카, 붉은 아틀리에 순서였습니다.

 

이에 대해 테이트 갤러리의 전 큐레이터는 이렇게 말했어요. “10년 전이라면 피카소나 마티스가 1위였을 겁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아티스트에게는 뒤샹이 전부에요. 그들이 생각하는 현대미술이란 다름 아닌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지금의 시대에 터너상을 받게 될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이 설문에 참여한 예술가 중에는 데미안 허스트, 데이비드 호크니, 트레이시 에민 등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뒤샹에게 투표했다고 해요. 예술가뿐만 아니라 큐레이터, 갤러리스트, 비평가 절반 이상도 <샘>에 투표했고요.

 

그렇다면, 뒤샹의 <샘>은 현대미술에 어떤 막강한 영향력을 준걸까요?

 

 

뒤샹 샘 비하인드: 장난에서 시작된 작품

미술계 가장 큰 영향을 준 변기. 이 작품엔 특별할 게 없습니다. 철물점에서 파는 변기에 서명을 해 전시한 게 전부죠. <샘>이 처음 등장한 건 1917년이었어요. 뉴욕 독립 미술가 협회가 주최한 공모전에 출품됐죠. 협회는 보수적인 전미 디자인 아카데미에 반대하는 그룹이 결성한 것으로, 입회비 1달러와 연회비 5달러만 지불하면 누구나 2개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마르셀 뒤샹 © Fomestre sull'Arte

 

이 전시에는 심사위원이 있었어요. 그중 한 명이었던 마르셀 뒤샹은, 재밌는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립니다. “누구나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면, 진짜 신선한 작품을 내가 선보여야겠다!” 그렇게 뒤샹이 내놓은 작품이 바로 <샘 Fountain>이었습니다.

 

물론, 본인이 심사위원이었기 때문에 작품은 익명으로 만들었어요. 변기에 서명된 ‘R. Mutt’라는 이름은 뒤샹이 만든 일종의 부캐였습니다. 당시 인기 있던 만화인 <머트와 제프 Mutt and Jeff>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죠. 뒤샹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고, 작품 심사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다른 심사위원들의 반응은 안 좋았어요. 작품은 전시를 거부당합니다. 심사위원 대표는 ‘아무리 봐도 예술 작품 일 수 없다'며 강력히 반대했습니다.

 

Marcel Duchamp, Fountain (1917) © ARTnews

 

당시에 예술작품이라 하면, 회화와 조각이 전부였어요. 사진도 예술작품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였죠. 그런데 손으로 만든 것도 아닌, 철물점 변기를 전시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당시 시대적 분위기도 한몫했어요. 음담패설은 절대로 금기시 됐죠. 일반 가정용 신문에서는 ‘변기’라는 단어조차 사용할 수 없었을 정도였어요. 그렇다 보니, ‘신체 노폐물과 관련된 작품은 전시할 수 없다’는 반대 의견도 있었습니다. <샘>은 당시 심사위원들이 당황하고, 불쾌해할 만한 작품이었죠.

 

 

예술이 되기까지의 길고 긴 여정

뒤샹은 사건 직후, 심사위원 직을 사임합니다. 여기엔 두 가지 가설이 있는데요. 보수적인 아카데미에 저항해 열린 전시에서도 보수적으로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실망했다는 것과, 애초에 다른 심사위원들이 마음에 안 들어서 의도적으로 기획하고 그만뒀다는 것입니다. 뒤샹을 연구한 학자들은 의도적으로 도발하기 위해 내놓았다고 봐요.

 

그렇게 심사위원 직을 사임한 다음 달, 뒤샹은 동료 예술가와 함께 발간하는 소책자에 <샘>의 전시 거부 사건을 보도합니다. 다양한 예술을 표방하는 전시에서 작품이 거부된 상황을 비난하면서, <샘>의 예술적 가치를 담았죠.

 

© Tate

 

“머트 씨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샘>을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그것을 ‘선택’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매일 사용하는 평범한 도구를 선택했고, 새로운 제목과 관점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원래 용도를 지우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낸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예술가가 선택하고 이름을 붙이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예술 사조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기성품을 작품으로 만든, ‘레디메이드 Ready-made' 사조의 첫 작품이 됐죠. 물론,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시간도 매우 오래 걸렸어요. 무려 40년이 지나서야 예술성을 인정받을 수 있었죠. 그 긴 시간 사이, <샘>은 파손됐습니다. 작품에 사용된 변기도 단종되어 구할 수 없게 됐죠. 남아있는 건 사진 한 장뿐이었어요.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샘> 작품은, 모두 사람이 직접 만든 수공예 작품입니다. 기성품인 변기를 예술작품으로 만들며 레디메이드의 시작을 알렸지만, 핸드메이드 작품으로만 만나볼 수 있는 것이죠.

 

아이러니하지만, 그럼에도 뒤샹의 <샘>은 높은 가치를 가진 작품입니다. 일반적인 미술재료가 아닌 기성품도 예술가가 선택하면,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줬기 때문이죠. 이는 현대미술의 장르를 어마어마하게 다양하게 확장(비디오, 사운드, 설치, 퍼포먼스 등) 했지만, 동시에 현대미술을 난해하게 만들기도 했어요. 그런 점에서 공과 죄가 상반되는데, 뒤샹이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뒤샹이 남긴 영향력 두 가지

바로 저급예술의 확대, 그리고 레디메이드의 탄생이에요. 우선 저급 예술부터 살펴볼게요. 우리가 흔히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받는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실제로 뒤샹의 <샘> 이후, 변기에서 파생된 생리현상에 대한 작품들이 탄생했어요.

 

Andy Warhol, Oxidation (1977–78) © ART SPACE

 

똥에 대한 문장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박수받는다)으로 익숙한 앤디 워홀은 실제로 그 말을 하진 않았지만, 1960년대 초, 길거리에 <소변 회화>를 방치해 누구든 자유롭게 소변을 보게 한 적이 있어요. 또 1972년대 말에는 구리 안료를 바른 캔버스를 지인과 직원에게 소변을 보게 한, <산화 회화> 시리즈를 제작했죠.

 

Noritoshi Hirakawa, THE HOME-COMING OF NAVEL STRING / SPRING OF MUM (2003) © MMK

 

일본 예술가 히라카와 노리토시는 2004년 프리즈 아트페어에, 젊은 여성에게 매일 자신의 배설물을 바닥에 놓아두게 했어요. 그리고 그녀의 항문을 접사 촬영한 사진을 동시에 전시하는 작품을 출품했죠. 참고로, 사전부터 특수한 식이요법을 병행했기 때문에 냄새는 생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Maurizio Cattelan, America (2016) © Guggenheim Museum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2016년, <아메리카>라는 제목의 18K 순금 변기를 구겐하임 미술관 화장실에 설치해 관람객들이 사용하게 한 적이 있어요. 나중에 미술관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작품의 대여를 제안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샘>에서 영감 받아 생리현상에 관한 작품이 수도 없이 등장했어요. 금기시되던 걸 양지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예술의 주제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레디메이드의 탄생

© Concrete Playground

 

또 <샘>이 남긴 영향력은 바로, 레디메이드의 탄생이에요. 우리에겐 더 익숙한 내용일 텐데요. 레디메이드란, 대량 생산된 기성품을 이용한 오브제 작품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기성품이 예술이 될 수 있는 근거는 뭘까요? 뒤샹이 쓴 글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어요.

 

“어째서 만들다일까요? 만들다란 뭘까요? 무언가를 만들다, 그것은 파란색 튜브 물감을, 빨간색 튜브 물감을 선택하는 것. 팔레트에 조금 그것들을 올리는 일, 항상 일정량의 파랑을, 일정량의 빨강을 선택하는 것. 그리고 늘 화폭 위에 색을 얹을 장소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그것은 항상 선택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선택할 때는 물감을 사용할 수도 있고, 붓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성품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기성품은, 기계든 타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든,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이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도 할 수 있습니다. 선택한 것은 당신이니까요. 선택은 회화에 있어서는 중요한 일이며, 예사롭기까지 한 일입니다.” 

 

이 글을 보면 '선택'을 강조하는 걸 볼 수 있어요. 전통적인 회화 역시 선택에 근거했고, 재료가 전에 사용되지 않았던 것일 뿐, 예술가가 선택한다는 점에선 기성품도 회화의 영역에 들어올 수 있다고 본 것이죠.

 

또, <샘>의 출품이 거부되고 쓴 글에서 역시, 선택을 강조하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머트 씨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샘을 만들었는지 아닌지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는 그것을 선택한 것입니다. 생활에서 매일 사용하는 평범한 도구를 선택해 새로운 제목과 견해를 제시하고, 쓸모 있는 것이라는 의미가 사라질 수 있도록, 이 오브제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을 창조해 낸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히 선택하고 끝이 아니라, 이를 통해 새로운 견해를 제시한다는 거예요. 예술가가 선택하고, 이름을 붙이고,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는 그 일련의 과정을 예술로 본다는 건데요. 이 발상은 예술의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선택에 집중한 게 레디메이드라면, 선택된 오브제를 통해 확장된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개념미술이 등장한 것이죠.

 

 

개념미술의 탄생

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 (1965) © MoMA

 

가장 대표적인 작가가 조셉 코수스예요. 1965년 발표한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이 작품은 뒤샹의 <샘>, 앤디 워홀의 <캠벨 수프 캔>과 더불어 현대미술 도서에서 항상 다뤄지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진짜 의자, 그 의자의 사진, 사전의 ‘의자’ 정의를 복사한 글로 이뤄져 있어요. 실제와 재현, 본질을 의미하죠. 이건 미술사에서 오래도록 다뤄진 주제이기도 합니다. 이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면서 실제, 재현, 본질이라는 개념을 관객이 떠올리고 고민하게 만든 것이죠.

 

이런 의도는 '제목'을 통해 볼 수 있어요.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라는 제목은 ‘하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합니다. 의자(실제) 일 수도, 사진(재현) 일 수도, 정의(본질) 일 수도 있죠. 이렇게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개념적 사고를 하게 만들어내요.

 

Maurizio Cattelan, Comedian (2018) / Felix Gonzalez-Torres, Untitled (Perfect Lovers) (1991)

 

이처럼 작가의 개념, 아이디어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개념미술은, 레디메이드와 마찬가지로 일상적인 사물을 재료로 합니다. 작가의 선택으로 작품이 된 기성품이 사고의 확장을 만들어내기 때문에, 레디메이드의 심화 버전이라고도 불리죠.

 

이 개념미술은 난해하지만, 미술사적 가치가 큽니다. 이 시기엔 미술시장이 형성되고 예술 작품이 고가에 낙찰되며, 예술이 부자들의 장식품으로 전락할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는데요. 상품화되어버린 미술이 여전히 철학, 인문학 등 지적 장르에 비견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 속, 개념미술은 해답을 제시했단 평가를 받아요.

 

 

그렇게 오늘날까지 개념미술 작품은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 같은 걸출한 작가들을 탄생시켰죠. 난해하다고 불리기도 하지만, 작품의 해석을 들어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흥미로운 개념이 담긴 작품들이 정말 많아요. 여러분은 뒤샹의 <샘>부터 이어진, 레디메이드, 개념미술의 흐름. 어떻게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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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VuNfhi_lC84?si=MGHcDr3zJ8lkrVh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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