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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예술사

미술 범죄 시리즈 ❸ 미술품을 '테러'하는 세 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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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치오 폰타나 Lucio Fontana의 작업 모습 © STIMA

위 사진은 루치오 폰타나가 본인 작품을 만드는 모습을 촬영한 겁니다. 폰타나는 캔버스에 칼집을 내는 작품으로 유명해요. 이 기법은 전위예술, 즉,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아방가르드 사조로 분류됩니다. 전통적인 미술재료에 손상을 가하며 기존 예술의 권위에 저항한 것이죠. 폰타나의 작품은 그 예술성을 인정받으며 400억 원대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언뜻 미술품 테러로 보일 수 있는 폰타나의 작품. 하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폰타나의 작품은 미술품 테러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캔버스에 칼집을 내며 손상을 가하지만, 타인의 작품이 아닌 '본인 작품'에 한 행위이기 때문이죠.

미술품 테러는 작품에 '타인'이 손상을 가하는 걸 의미합니다. 그리고 미술품 테러는 크게 세 가지 이유에서 이뤄지죠. ① 대중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을 때, ② 작품 활동의 일환으로, ③ 혹은 의도치 않은 실수로. 어떤 이유에서건 작품이 테러당한 순간, 이전 모습을 다시 보기는 어렵습니다. 때문에 미술품을 테러 한 이들에게는 법적인 조치가 가해지기도 하는데요. 때로는 작품이 테러된 그 과정 자체가 예술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작품이 망가진 건 똑같지만, 어떤 경우는 예술이 되고 어떤 경우는 범죄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 미술품 테러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요?

 

 

[1] 대중에게 전하고픈 메시지가 있을 때

모나리자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직후, 관객이 촬영한 사진 © ArtnetNews

가장 최근 있었던 건 올해 5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 <모나리자> 테러 사건입니다. 한 남성이 루브르에 할머니 분장을 하고 들어가, 작품에 케이크를 던진 테러였죠. 남성은 케이크를 던진 직후, ‘Think of the Planet!’(지구를 생각하라!)고 외치며 끌려나갔습니다. 그리고 이 상황은 현장에 있던 관객들이 사진과 영상을 찍으며 빠르게 퍼져나갔죠.

남성은 철저한 계획 하에 테러를 진행했습니다. 관객이 많이 몰리는 일요일, 많은 이들이 이 테러를 볼 수 있도록 미술관으로 향했죠. 그리고 그는 휠체어 탄 노부인 분장을 하고 모나리자 앞으로 갑니다. 사람이 많이 몰려있어도 양보받을 수 있도록요. 작품 앞으로 충분히 다가간 후에, 남성은 휠체어에서 뛰어내려 모나리자를 주먹으로 마구 내리쳤습니다. (작품은 방탄유리에 싸여있어, 정확히는 작품이 아닌 유리를 내리쳤죠.) 이후 케이크를 유리에 바르고 장미꽃을 사방으로 던졌습니다.

 

모나리자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직후, 수습하는 직원들과 남겨진 휠체어 © ArtnetNews

이후 10초-15초 만에 경비원이 이 남성을 제압했고, 남성은 끌려나가며 이렇게 외쳤어요. ‘지구를 파괴하는 이들이 있다. 지구를 생각하라! 내가 이런 행동을 한 이유다!'

남성은 36세 기후 운동가였습니다. 이 테러를 저지른 건, 예술가들이 ‘환경 이슈’에 대해 충분히 집중하지 않는 걸 항의하기 위함이었다고 해요. 파리 검찰청은 사건 발생 다음 날 이 남성을 경찰서로 연행하고, 정신 진료를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또 동시에 문화재 훼손 혐의에 대한 수사도 동시에 진행했고요. 모나리자가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 테러리스트들이 모나리자를 선택한 이유

© Louvre Museum

모나리자가 이런 테러를 겪은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1911년에는 도난 사건을 겪기도 했고, 1956년에는 황산 테러 사건이 발생했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방탄유리로 보호되지 않았기에 그림 아랫부분이 훼손되었고, 현재도 이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또 같은 해에 관객이 작품에 돌을 던지며 그림 속 여인 왼쪽 팔꿈치가 망가지기도 했죠. 이후 복원작업을 거쳐 2005년부터는 두께 4cm의 강화유리에 보호된 채 전시 중입니다.

하지만 이후로도 2009년, 한 여인이 작품에 뜨거운 차가 담긴 찻잔을 던지기도 했어요. 여인은 프랑스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항의를 하고자 테러를 저질렀다고 해요.

 

1911년 도난사건 이후, 모나리자 기사가 엄청나게 쏟아졌었다. © Artnet News / 훼손 후 복원을 거친 모나리자 © Wikipedia

모나리자가 이렇게 많은 테러를 겪은 건, 작품이 가진 가치가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모나리자는 미술사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 모두 매우 높은 작품이에요. 우선 미술사적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몇 안 되는 완성작이자, 다 빈치의 스푸마토 기법과 해부학적 지식이 집약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받습니다. 또 다 빈치가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던 유품이기도 하고요.

경제적 가치 역시 매우 높습니다. 프랑스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정확한 가격 추산은 어렵지만, 대략 2조 3천억 원-40조 원 내외로 추정된다고 해요. 이 금액은 루브르의 연간 방문객 수와 이들이 모나리자를 보기 위해 소비하는 금액을 고려해 산정된 것입니다. 만들어진 지 5백 년이 넘은 작품이지만, 작품이 가진 높은 가치 덕분에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에도 아주 좋은 수단으로 자리매김했죠.

 

 

[1-2] 가해자 처벌은 이렇게 진행된다

방탄 유리, 작품 접근 제한선, 경호원으로 보호 중인 모나리자 © National Geographic

이처럼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미술품 테러를 감행했을 때, 경찰 조사는 당연히 받게 되고 사건의 경중에 따라 미술관 측에서 고소를 하기도 합니다. 고의성이 입증되고 범죄의 질이 나쁠 경우 형을 살 수도 있죠. 동시에, 작품에 테러를 가한 가해자는 정신감정을 받기도 합니다. 정신질환이 있을 경우 처벌의 수위가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때에 따라 작품 복원 비용을 가해자에게 청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품을 복원하는 데에는 미술관이 비용을 부담하거나, 보험회사에서 비용을 부담해요. 그리고 일정 기간 복원을 거쳐 다시 전시되죠. 하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시됩니다. 때문에 미술품 테러의 진짜 피해자는 관객이라 보는 시선도 있어요. 더 이상 온전히 작품을 마주하기 어려워지니까요. 실제로 오늘날 모나리자는 두 개의 작품 접근 제한선, 상시 대기 중인 경호원, 방탄유리로 작품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2] 작품 활동의 일환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 / <코미디언>을 먹고있는 데이비드 다투나 © The Guardian

반면 똑같은 미술품 테러지만 어떤 법적 조치도 진행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미술품에 테러를 가한 행위 자체를 예술로 보죠. 이 경우에는 대부분 가해자가 범죄자가 아닌, 예술가인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예술가의 미술품 테러는 작품을 ‘먹는’ 방식으로 이뤄졌어요. 뉴욕 예술가인 '데이비드 다투나 David Datuna'가 '마우리치오 카텔란 Maurizio Cattelan'의 작품을 먹은 사건이었습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이탈리아의 조각가인데요. 대중에게는 <코미디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은 바나나를 테이프로 벽에 붙인 단순한 구성이지만, 12만 달러(한화 약 1억 7천만 원)라는 금액에 팔린 바 있죠. 그리고 2019년, 이 작품이 마이애미 아트 바젤에 전시되었을 때 테러가 일어납니다. 데이비드 다투나가 이 작품을 벽에서 떼어내고, 먹어 치웠죠. 그리곤 ‘12만 달러짜리 맛이 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본인 작품 옆에 선 마우리치오 카텔란 © The Telegraph

다투나가 작품을 먹은 이유는 '배고파서'였다고 해요. 작품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먹어치우며 파괴했지만, 다투나는 이 행위가 기물 파손이나 테러가 아닌 퍼포먼스 아트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배고파서 먹은 것이기에 '헝그리 아티스트 퍼포먼스'라 명명했어요. 사건이 논란이 되자 다투나는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그리고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천재적인 예술가이고, 그의 작품을 먹은 것에 대해서는 미안하지 않다며, 이게 예술가들이 대화하는 방식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작품을 먹어 치운 사건은 예술계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해요.

이런 식으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파괴해버리는 방식의 테러는 미술사에서 파괴 예술이라는 장르로 받아들여집니다. 파괴 예술은 20세기 만들어진 사조로, 파괴와 폭력을 예술 창조의 또 다른 방식으로 인식하는 기법이에요. 양차 세계대전을 통해 겪은 폭력, 파괴라는 독특한 현상을 수단으로 하는 예술 사조죠.

 

 

[2-1] 내 작품이 아닌, 다른 예술가 작품을 테러하는 게 포인트

<지워진 쿠닝의 드로잉 Erased de Kooning Drawing>, 로버트 라우센버그, 1953 © wikipedia

흥미로운 것은, 예술가가 본인 작품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파괴하는 케이스가 대부분이라는 거예요. <지워진 쿠닝의 드로잉 Erased de Kooning Drawing> 이 작품의 경우, 윌렘 드 쿠닝의 작품을 싹 지워버린 작품입니다.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쿠닝의 작품을 구매해 싹 지운 후 본인 이름으로 내놓았죠.

사실 라우센버그는 이전부터 본인 작품을 지워내는 작업을 줄곧 진행해왔었습니다. 하지만 본인 작품을 지우는 건 결국 반쪽짜리 예술이라 생각했다고 해요. 그리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지우기로 합니다. 그렇게 쿠닝의 작품을 지워버린 것이죠.

 

(좌) 로버트 라우센버그 Robert Rauschenberg / (우) 윌렘 드 쿠닝 Willem de Kooning © Wikipedia

이 작품은 처음 공개되었을 1953년 당시 큰 반향을 끌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로버트가 본인의 회고전에서 작품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며, 쿠닝이 본인 작품을 지워버리는 데 동의하고 작품을 내주었다고 이야기하죠. 이에 쿠닝이 크게 분개합니다. 예술가 간의 교류는 암묵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하기 때문이에요. 본인 작품을 지우는 건 괜찮지만, 이를 허락한 걸 공개한 건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죠. 미술품 테러가 예술이 되는 과정이 매우 까다롭고 복잡함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어찌 됐건 이 경우에는 작가가 동의하고 제작에 들어간 것이기에 법적 절차는 받지 않고, 행위 자체가 예술이 된다고 볼 수 있어요.

 

 

[2-2] 다양한 종류의 테러 a.k.a 파괴 예술

마르셀 뒤샹 Marcel Duchamp의 작품 <L.H.O.O.Q> © Wikipedia

오마주 형태의 파괴 예술도 있습니다. 오마주는, 프랑스어로 감사, 경의, 존경을 뜻하는 말이에요. 특정 예술가의 작품을 작품에 그대로 사용하거나 그 예술가의 스타일이나 분위기를 작품에 사용하는 등 다양한 방식이 있죠. <샘>으로 잘 알려진 작가 '마르셀 뒤샹'은 오마주를 역이용해 파괴 예술을 선보였습니다.

<L.H.O.O.Q>. 뒤샹은 이전부터 모나리자에 대한 맹목적인 경외심에 지쳤다고 말하며, 모나리자 프린트를 구매해 그 위에 연필로 콧수염을 그렸어요. 그리고 아래에 L.H.O.O.Q (Elle a chaud au cul)라는 글자를 썼죠. ‘그녀는 매력적인 뒷모습을 가졌다’는 의미로, 일종의 희롱이었습니다. 이 역시 모나리자라는 작품이 갖는 이미지에 폭력을 가하고, 기존의 가치를 해체한 파괴 예술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지며 예술작품이 되었죠.

 

 

[3] 의도치 않은 실수로 인한 미술품 테러

도널드 저드 Donald Judd의 작품 Untiled (Menziken 91-143), 1991 © Andre Viana

지난 10월 9일에는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갤러리인 국제갤러리가 미술품 테러 사건에 휘말렸어요. 이 문제로 법정까지 가게 되었죠. 세계적 설치미술가인 도널드 저드의 재단 측이 작품 훼손을 이유로 국제갤러리를 고소했기 때문입니다.

문제의 작품은 저드가 1991년 완성한 <무제 91-86>. 알루미늄과 투명 아크릴 유리로 제작된 네모난 상자가 벽에 부착된 설치 작품입니다. 재단 측에서 판매를 위해 국제갤러리에 2015년 위탁했는데요. 이를 국제갤러리 창업주의 장녀가 운영하는 티나킴갤러리가 그해 뉴욕 프리즈 아트페어에 출품했습니다. 이후에도 여러 아트페어에 출품했지만 판매되지 않았고, 위탁계약은 2018년 종료되었죠. 그리고 작품이 재단에 다시 돌아왔을 때, 심각한 훼손이 발견됐습니다. 작품에 지문이 남은 것이죠.

고작 지문이 남은 게 어떻게 미술품 테러가 될 수 있나 의심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은 쉽게 자국이 남는 알루미늄 재질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리고 표면에 지문 등이 묻을 경우, 시간이 지나 지문의 기름기가 표면과 반응해 영구적인 흔적을 남길 수 있죠. 하지만 갤러리 측은 작품 상태에 문제가 생겼음에도 재단에 어떤 연락이나 신속한 처리가 없었고,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남기며 작품 판매가 불가하게 되었습니다.

 

 

[3-1] 법적 절차를 밟게 되는 기준, '고의성'

도널드 저드 Donald Judd의 작품 Untiled © MoMA

해당 작품은 85만 달러 (약 12억 원)으로, 갤러리 측은 피해 보상 차원에서 작품 시세의 80% (68만 달러, 한화 약 9억 7천 5백만 원)을 지불했습니다. 하지만 재단 측에서는 나머지 20%에 달하는 17만 달러와 이자 및 손해배상금 10만 달러를 요구하고 있어요. 누가 지문을 남겼는지, 언제 남겼는지 알 수 없지만 작품은 이미 훼손되었죠. 이를 갤러리 측이 알고 있었는지, 알면서 의도적으로 숨긴 것인지 여부가 재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여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작품에 의도치 않은 실수로 손괴가 가해질 경우, 미술계에서는 이를 ‘사고’로 여기고 복원비용 정도만 청구하거나 이후 작품 보호 정비를 더 강화하는 정도로만 유지합니다. 때문에 이번 이슈가 과한 대응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훼손당한 작품의 모습 © 조선일보

일례로, 국내에서 21년 4월 진행된 그래피티 전시장에서 의도치 않은 작품 테러가 이뤄졌습니다. 5억 원 상당의 작품을 관객 참여형 작품으로 착각한 커플이 작품에 그림을 그린 이슈였죠. 전시되고 있는 작품에 그림을 덧그린 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불가하지만, 당시 전시장에는 실제로 관객 참여형 작품이 많이 있었고, 해당 작품 앞에도 페인트통과 붓이 있었다고 해요. 미술관 측에서는 이 재료들이 디스플레이를 위한 것이었고, 작품 접근 금지 선을 그어놨다고 언급했지만 충분히 착각할 만한 상황이었죠.

작품 복원 비용은 약 천만 원. 하지만 미술관 측에서는 작품 훼손에 고의성이 없다고 보고, 이들을 선처하기로 합니다. 작가 측에서도 따로 소송이나 보험처리 없이 작품을 복원하기로 했고요. 이처럼 작품 테러의 고의성 여부는 이후 작품의 유지 보수, 재판 결과 등에 큰 영향을 주는 걸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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