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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예술사

미술 범죄 시리즈 ❷ 미술품 약탈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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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박물관의 대표 약탈품, <Elgin Marbles>의 일부분 © Wikipedia

약탈의 시작

세계 유명 박물관에는 진귀한 미술품과 문화재가 많습니다. 그런데 종종 그 나라의 유산이 아닌, 다른 나라의 작품이 걸려있는 경우를 볼 수 있어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는 이집트의 미라가 있고, 영국 대영박물관에는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 조각이 있죠. 이 문화재에는 불편한 진실이 존재합니다. 바로, ‘약탈품'이라는 것이죠.

문화재 약탈은 고대 로마부터 있었습니다. 로마 하면, 수많은 전쟁을 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죠. 당시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가 패배국의 문화재를 빼앗는 것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승리의 상징, 전리품으로 자국에 들여오는 일이 많았죠. 그리스, 이집트, 로마의 유산은 전쟁을 거치며 전 세계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대영박물관의 모습 © New York Times

이러한 약탈 전통은 근대에 들어서며 더욱 고도화됩니다. 일례로, 18세기에 나폴레옹은 이집트 원정을 떠나며 프랑스의 학자들을 데리고 갔는데요. 이집트의 귀한 유물을 선별해 가져오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때 수집된 유물은 지금도 프랑스와 영국 등에 소장되어 있죠. 이후 20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거쳐 세계대전, 2000년대 이라크 전쟁, 시리아 내전 등의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국보급 문화유산이 약탈당하는 일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약탈된 미술품 이야기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 © Wikipedia

약탈당한 미술품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의 작품,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입니다. 이 작품은 클림트의 작품 중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작인데요.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 정부를 상대로 나치가 약탈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초상화입니다. 그리고 실존 인물을 그린 그림이죠. 작품 속 여인은 ‘아델’로, 클림트의 후원자였습니다. 그리고 아델의 막내 조카인 마리아 알트만은 나치에게 빼앗긴 그림을 돌려받기 위해 오스트리아 정부에 소송을 겁니다. 때는 1998년, 당시 마리아의 나이는 80대 후반이었는데요. 고령의 나이에 개인이 국가와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았죠. 몇 해에 걸친 소송 끝에 2006년, 마리아가 90세가 되던 해에 작품은 마리아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이때 마리아는 이 작품 외에도 클림트의 다른 작품까지 함께 돌려받았는데요. 마리아는 돌려받은 작품을 모두 미술관에 기부했습니다.

 

영화 Woman in Gold (2015)

나치에 의해 약탈되었다가 수십 년 만에 되돌려 받은 작품, <아델 블로흐 바우어의 초상>. 이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집니다. 2015년 개봉한 <우먼 인 골드>죠. 영화는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해 그림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풀어냈는데요. 영화를 통해 볼 수 있듯, 약탈당한 작품을 돌려받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이 이야기는 ‘극적인 실화’라 불리며 영화화되었죠. 

 

 

1970년에야, 약탈이 불법이 되다

칼 마이어 Karl Meyer © New York Times

미술품 약탈이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입니다. 당시 ‘과거 문명에 기원을 둔 것’이라면 종류를 불문하고 약탈이 일어났죠. 그리고 약탈된 작품들은 도난당한 작품과 달리, 국가가 관리하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버젓이 전시됐습니다. 불법적으로 거래되는 일도 있었죠. 칼 마이어는 1973년 자신의 저서 <약탈당한 과거 The Plunderd Past>에서 분묘와 사찰을 상대로 저지르는 수탈에 대해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오랜 전통을 지닌 작업”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수탈 행위는 이 일에 관여된 사람들의 수나 인구의 분포도나 수익성 면에서 볼 때 가장 오래된 직업, 즉 매춘과 비교해 전혀 뒤지지 않는다. 도굴범도 아름다움이 돈이 된다는 사실, 아름다움에 대한 수요는 끊기는 법이 없다는 사실을 고급 매춘부만큼 잘 알고 있다. 법규나 도덕적 제약, 신상의 위해 가능성이 별다른 방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는 두 직업 모두 마찬가지였다. ”

나치 약탈 이후 80년 만에 본국으로 송환된 Lovis Corinth의 작품 © Reuters

미술품 약탈이 명백한 불법으로 여겨지게 된 건 1970년대입니다. 그동안 약탈은 승리의 결과, 즉, 전리품으로 여겨져 왔고, 이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후반에서야 전문적인 도굴범과 불법 거래에 대한 경고가 잦아졌죠.

이에 따라 고고학계와 사학계는 미술품 약탈 불법화에 착수합니다. 유네스코를 끼고, 약탈품의 불법 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을 논의하기 시작했죠. 도난당하거나 도굴된 문화유산은 반입, 거래,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형사법상 범죄로 처벌되도록 권고하는 법안이었습니다. 이미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약탈품이 전시 중이었지만, 소급 적용은 되지 않고 이후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만 법안이 적용되었죠.

 

Paul Getty Museum © Wikipedia

이 법안에 걸린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미국의 ‘폴 게티 미술관'입니다. 폴 게티 미술관은 1세대 미술 컬렉터인 진 폴 게티의 소장품을 전시하려 만들어진 곳으로, 설립 이후부터 지금까지 무료로 운영되는 LA 최대 규모 미술관인데요. 폴 게티 미술관의 학예사와 미술품 딜러 간 약탈 미술품 거래 혐의가 밝혀지며, 기소되었습니다. 이후 2007년에 폴 게티 미술관은 소장품 상당수를 반환해야 했죠. 

이 외에도 유명 미술관의 약탈 미술품 반환이 이어집니다. 2006년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보스턴 미술관이 1970-1990년대에 매입한 그리스 로마 유물을 이탈리아에 반환했죠.



역사 속 약탈품은 돌려받을 수 없는 걸까?

대영박물관 The British Museum, <Elgin Marbles> © British Museum

이들은 모두 유네스코의 ‘도난 유산 반입, 거래, 소지 행위 형사법'에 따라 약탈품을 반환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따로 있습니다.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약탈된 미술품의 반환 여부'죠. 앞서 언급했듯이, 법안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약탈은 대부분 침략 과정에서 일어났으며, 이때의 약탈은 승리의 전리품으로 여겨져 굳이 불법이라 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오래 전의 역사인 만큼, 이 약탈품이 가진 가치는 매우 컸죠. 

가장 자주 언급되는 건 대영박물관입니다.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은 약 800만 개로, 현존하는 박물관 중에서 가장 크고 많은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다수는 약탈품이죠. 더 가디언 The Guardian에서는 ‘대영박물관은 세계 최대의 약탈품 수령처다. British Museum is World’s Largest Receiver of stolen goods’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또 ‘대영박물관은 건물과 경비원 빼고는 영국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말이 농담처럼 돌기도 하고요. 대영박물관의 소장품은 대다수 식민 지배로 약탈한 것들인데요. 20세기 중반 이후, 식민 지배를 벗어난 국가를 중심으로 문화재 본국 송환 요구가 빗발칩니다. 하지만 이런 요청은 지금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약탈품에 대한 논쟁이 이어지며, 크게 두 가지의 팽팽한 이론이 탄생합니다. ‘문화 국제주의’와 ‘문화 민족주의'죠.

 

© Bid Piece

두 이론 모두 문화재의 유지 보수, 관리와 보전이 최우선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문화 국제주의에서는 이를 ‘잘할 수 있는 국가'에서 하는 것이 좋다는 걸 이야기하고, 문화 민족주의에서는 ‘본국에서 이뤄질 때 완전해진다'라고 언급하죠. 문화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주장은 지금까지 첨예하게 대립하며 팽팽한 줄다리기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Declaration on the Importance and Value of Universal Museums © Cleveland Museum of Art

하나 확실한 것은, 더는 미술품 약탈이나 불법 거래, 반입, 소지는 묵인되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2002년 12월, 유럽과 미국에 소재한 18개 미술관은 성명을 발표합니다. ‘세계 박물관의 중요성과 가치 선언: 박물관은 모든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 이 공동선언문은 서두에 이렇게 이야기해요.

 

우리 박물관들은 고고학적, 예술적, 민족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의 불법 거래를 엄격히 금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그리고 미술관과 박물관의 역할에 대해 강조하죠.

 

박물관은 한 국가의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 모든 국가의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 박물관은 문화 발전의 기여자로서 끊임없는 재해석 과정을 통해 지식을 함양하는 소임을 안고 있다. 박물관의 소장품 하나하나가 이러한 재해석 과정에 이바지한다.

게티 신탁 회장, 제임스 쿠노 James Cuno © Oxford Union

이 성명은 유럽, 미국의 미술관이 주로 참여했기 때문에 문화 국제주의적 관점을 많이 띄고 있어요. 하지만 문화 국제주의자 중에서도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하는 흐름은 있습니다.

일례로 게티 신탁의 회장 제임스 쿠노는 2020년부터 ‘고대 세계의 현재: 과거를 위한 미래'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대 유물을 발굴해 연구하고 보존하기 위한 프로젝트죠. 서구에서 그간 약탈해 간 유명 문화재는 그대로 두되,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치 있는 문화재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연구를 돕는다는 취지예요. 이미 강대국이 된 서구 국가들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품은 본국에 돌려주지 않더라도, 새로운 문화재를 발굴해 돕는 것이죠. 이 프로젝트는 문화 국제주의와 문화 민족주의 양측의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약탈된 미술품은 역사에 따라 크게 세 가지 국면을 맞이했어요. ① 약탈이 불법으로 여겨지기 전, ② 불법으로 여겨진 후, 그리고 ③ 문화 민족주의와 국제주의의 대립 발생 이후 최근. 약탈품 반환과 관리, 전시를 둘러싼 다양한 담론들 속,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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