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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 예술사

미술 범죄 시리즈 ❶ 미술품은 왜 자꾸 도난 당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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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tflix

미술 범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아마 ‘미술품 도난'일 거예요. 천문학적인 가격, 공개된 장소에서의 전시, 폐장 이후 허술해지는 경비. 도둑들의 입장에서 작품을 훔칠 이유는 정말 많습니다.

미술품 도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1960년대 후반이에요. 미술시장이 활성화되고, 작품의 시장가치가 상승하며 높은 금액의 작품이 거래되던 때죠.

이후 지난 반세기 동안 미술관, 박물관의 보안 시스템이 대대적인 개선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미술품 도난 사건은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입니다. 인터폴의 수사를 통해 짐작되는 규모는 매년 50억 달러 (약 7조 800억 원)에 달하죠. 또 이 수치는 매년 10%씩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미술품 절도가 하나의 거대 사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시각도 있죠.

그렇다면, 도난당한 작품들은 어떻게 팔리는 걸까요? 또 누가 사는 걸까요? 그리고, 되찾은 작품은 어떻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요? 빋피의 미술 범죄 시리즈, 1화는 미술품 도난입니다.

 

 

01 훔친 작품이 돈이 되는 과정

Paul Cezanne, Boy in a Red Vest, 1889 © Wikipedia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이유는 대개 ‘돈' 때문입니다. 미술품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이 가진 천문학적인 금액은 그림을 훔치는 가장 대표적이고, 간단한 이유죠. 

일례로 1958년, 폴 세잔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1898)>은 한 경매에서 61만 6천 달러(한화 약 8억 7천2백만 원)에 낙찰되었습니다. 1958년 당시로서는 경매 사상 최고가였죠. 오늘날에는 미술품 경매에서 고가로 낙찰되는 작품들이 자주 보도되는데요. 당시엔 그런 뉴스가 없었습니다.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이 고가 미술품 경매 뉴스의 최초 사례죠. 덕분에 한동안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이라 불렸던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은 이후 2008년 도난당합니다. 그리고 4년 만인 2012년 4월에 회수되었죠.

 

Paul Cezanne, The Basket of Apples, 1889 © Wikipedia

도둑들이 이 작품을 훔친 건, 돈 때문이었습니다. <붉은 조끼를 입은 소년> 경매 이후로, 인상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꾸준히 높은 가격대에 팔려나가고 있었습니다. 이전까지 ‘대가’라 불리던 렘브란트 같은 예술가보다, 인상주의 작가가 더 비싸게 팔릴 거란 인식이 널리 깔려있었죠. 

폴 세잔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로, 우리에겐 <사과 정물화>로 잘 알려진 작가인데요. 이 작품은 오늘날 현대미술 탄생의 시작점이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 세잔의 작품이 당시 경매 최고가를 달성하며 뉴스에 보도되고, 이 과정에서 그의 명성이 더 단단해지니, 도둑들의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Julian Radcliffe © The Telegraph

하지만 성공적으로 작품을 훔쳤다고 하더라도, 작품이 곧 돈이 되는 건 아닙니다. 팔려야 돈이 되죠. 하지만 일반적인 시각에서 봤을 때, 작품을 훔치는 것보다는 훔친 작품을 파는 게 더 어렵습니다. 작품을 훔칠 당시의 경비보다, 도난당한 작품을 쫓는 경비가 더욱 삼엄하니까요. 이에 대해 ‘영국 도난 미술품 데이터베이스’의 창립자 줄리언 래드클리프(Julian Radcliffe)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술작품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려 드는 실세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범죄 세계의 사업가들이죠. 은행의 보안설비 강화 때문에 돈을 훔치기 어려워지고, 돈 세탁에 관한 제재 때문에 국제적으로 자금을 움직이기가 어려워지는 가운데 미술품은 점점 더 매력적인 절도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술품을 거래에 활용하려 드는 자들은 다양한 범죄에 연루되어 있습니다. 마약, 매춘, 사기, 갈취, 불법 무기 매매 등 다양하죠. 도난된 미술품 역시 이미 범죄에 연루된 작품이기에, 그 거래는 이러한 지하세계를 통해 이뤄집니다.

 

도난된지 30년만에 회수한 샤갈의 그림 © FBI

하지만 지하세계의 거래 역시 많은 위험부담을 안고 있습니다. 범죄자들 간의 거래는 또 다른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죠. 또, 작품의 가치가 높을수록 많은 사람이 꼬이게 됩니다. 작품을 구매하려는 사람 중에는 언더커버가 있을 수도 있고요. 때문에 많은 경우 이미 구매자가 정해진 후에 도난이 일어납니다. 미술품 절도범 대니얼 골든은 이런 말을 남기기도 했어요.

그림을 훔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살 사람을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 사람을 구해놓지 못하면, 제아무리 비싼 그림을 훔쳐 와도 소용이 없다.

미술품 도난의 대부분은 누군가의 사주로 작품이 확정된 상태에서 진행됩니다. 그리고 이 작품은 미술관을 떠나 지하세계 누군가의 소장품이 되는 것이죠. 마약이나 불법 무기 등의 거래에 현금 대신 사용되기도 하고요. 어떻게 사용되든, 작품은 전 세계 관객의 곁을 떠나게 됩니다.

 

 

02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작품을 훔치는 도둑들

렘브란트의 작품을 도난당한 미술관의 모습 © Wikipedia

작품이 도난당했을 때 피해자는 대부분 작품 소장자나 소장 미술관일 거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피해자는 우리 모두이기도 합니다. 특히나 그 작품이 공공미술관에서 도난당했을 경우엔 더 그렇죠. 많은 사람이 감상하고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을 볼 수 없게 된 거니까요. 그리고, 이 지점을 노리고 작품을 훔치는 도둑도 있습니다.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작품을 훔친 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으로요.

이전에는 작품을 인질로 두고 돈을 요구하는 도둑도 있었습니다. 작품을 도난당한 미술관에서는 돈을 주고서라도 작품을 돌려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런 사례가 많아지자 ‘도둑들에게 돈을 줘선 안된다'라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돈을 주기 시작하면, 더 많은 작품이 도난당할 거란 이유에서였죠. 이후 작품은 지하 세계에서 거래되곤 했는데요.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작품을 훔치는 도둑들’은 계속 미술관을 상대로 협박을 이어갑니다.

 

Jan Vermeer, The Love Letter, 1669 © Wikipedia

일례로 베르메르 작품 도난 사건을 들 수 있습니다. 베르메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잘 알려진 작가인데요. 동시에 미술사에서 가장 신비로운 작가 중 한 명이기도 합니다. 네덜란드에 기반을 둔 작가라는 사실 외에는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죠. 또, 작품 수도 37점으로 매우 적은 편입니다. 이 때문에 작품 한 점당 1억 달러(한화 약 1천4백억 원)의 가치는 기본이라고도 이야기하죠. 이에 도둑들은 베르메르 작품을 타깃으로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베르메르 작품을 훔친 도둑들은 공통된 특징이 있었습니다. 정치적인 목적으로 작품을 활용했다는 점이죠. 1971년, 한 도둑은 베르메르의 <The Love Letter>를 훔칩니다. 그리고 그림을 돌려주는 대가로 정부의 정책을 바꿀 것을 요구했죠. 정확히는, 동파키스탄 난민에게 원조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 외에도 베르메르 작품은 <세 사람의 연주회>, <편지 쓰는 여인과 하녀>, <기타를 치는 여인> 등이 도난당했는데요. 도둑들은 하나같이 정치적으로 작품을 활용합니다. 외국에 수감된 자기 나라 범죄자를 풀어달라 거나, 정부의 ‘정책을 취소하지 않으면 작품을 태워버리겠다’는 협박도 있었죠. 베르메르의 작품 도난은 ‘아트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Jan Vermeer, 세 사람의 연주회(The Concert), 1664 © Wikipedia

작품을 돌려받기 위해 그 대가로 돈을 주는 게 지양된 것처럼, 정치적 요구 역시 들어주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때문에 베르메르의 작품은 <세 사람의 연주회>를 제외하고는 모두 되찾을 수 있었죠. 물론, 작품은 도둑들의 분노로 크게 훼손되거나 긁힌 자국으로 망가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 37점뿐인 대가의 작품을 되찾은 것은 의미 있었죠. 작품은 복원을 거쳐, 다시 우리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03 도난당한 작품의 공통점

© The Warlus

해마다 작품 경비가 삼엄해지고, 도난 작품에 대한 수사 강도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난 작품 수는 매해 증가하고 있죠. 이를 예방하기 어려운 건, 도둑들이 어떤 그림을 훔칠지 예상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림 도둑들은 미술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거나, 작품을 보는 안목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단순히 비싼 작품만 훔치는 것도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둑들이 손대는 작품에는 세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첫째로, 도둑들은 유명하고 비싼 작품을 훔칩니다. 구매자를 명확히 정하지 않은 채 작품을 훔칠 경우, 구매자를 찾아야 합니다. 이때, 누구나 탐낼 만큼 유명하고 비싼 작품이 도둑들로서는 위험을 감수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죠. 미술품을 잘 모르는 지하세계 범죄자들도 유명한 작품을 못 알아보지는 않으니까요. 만약 작품 판매에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원 소장자와 작품 반환을 두고 협상할 경우 가치가 높을수록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베르메르의 작품이 희소하고 비싸면서 유명한 작품이었기에, 테러나 협박에 자주 사용된 것처럼요.

 

모나리자를 되찾은 후 남긴 사진 © Sotheby's

둘째로, 훔치기 쉬운 사이즈의 작업을 훔칩니다. 대개 미술품 도둑들은 조직적으로 움직입니다. 최소 두세 명에서 수십 명이 움직이기도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미술관에서 가지고 나오는 것은 공수가 많이 들기 때문에, 대개 훔치기 쉬운 작은 사이즈의 작품을 훔칩니다. 도난 과정과 이후 진행되는 판매 과정에서 모두 작은 사이즈가 운반이 편리하기 때문이죠. 도난 사건으로 유명세를 더 더하게 된 <모나리자>는 세로 77cm, 가로 53cm로 작고, <절규> 역시 세로 73cm, 가로 91cm로 사람이 들고 운반하기 쉬운 사이즈의 작품입니다.

 

셋째로, ‘의미’를 가진 그림을 훔칩니다. 그 의미는 미술사적 의미일 수도 있고, 정치적 의미일 수도, 경제적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일례로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몇 안 되는 작품이자, 다 빈치 특유의 실험적 기법인 스푸마토가 잘 구현된 작품으로 높은 미술사적 가치를 가진 그림인데요. 1911년 루브르 박물관에서 도난당했습니다. 2년 만에 잡힌 진범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이탈리아의 대표 화가이다. 그의 작품을 고국에 돌려놓고자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덕분에 그는 이탈리아에서 국가 영웅 대접을 받기도 했는데요. <모나리자>는 이탈리아로 돌아가진 못했습니다. 여전히 루브르에서 세계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죠.

 

© Netflix

미술품 절도 범죄는 때로 매력적인 이야기로 소비됩니다. 절도를 경험한 작품은 오히려 극적인 스토리텔링이 더해지며 가격이 높아지고, 많은 범죄 영화 중에서 가장 섹시하게 묘사되는 캐릭터도 미술품 도둑들이죠. 이런 콘텐츠들은 결국 미술품 절도에 낭만적인 요소를 더하며, 현실에서 더 대담한 절도 범죄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미술품 도난의 현실은 영화보다 더 어두운 모습입니다. 훔친 작품은 마약거래나 불법 무기 거래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고, 이런 거래는 대부분 금품 갈취, 고통, 폭력으로 이어지죠. 작품 도난 사건을 흥미로운 이야기가 아닌, 잔혹한 범죄로 인식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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