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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이슈

경복궁 낙서 테러가 예술이 될 수 없는 3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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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었다고 주장한 피의자의 낙서와 체포 모습

 

잊힐 만하면 미술품과 문화재 테러 사건이 계속 발생합니다. 최근엔 경복궁 스프레이 테러가 있었죠. 그리고 뒤이어 모방범죄가 발생했습니다. 피의자는 본인의 블로그를 통해 그저 예술을 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죠.

 

미스치프가 말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고 싶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미스치프는 다른 예술가의 작품을 도려내거나, 위조해 판매하는 범죄에 가까운 작품을 선보인 바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행위는 범죄가 아닌 예술이라 평가받죠. 이 맥락에서 보면 본인의 행위도 예술이라 주장한 건데요. 맥락을 좀 잘못짚은 것 같습니다. 

 

미술품 테러가 예술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거든요.

 

1) 작품 제작자의 승인: 코미디언

Maurizio Cattelan, Comedian (2018) © Artsy

 

첫째로는 작품 제작자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2018년,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 <코미디언>이 대표적인데요.

바나나를 덕 테이프로 벽에 붙인 단순한 작품이 약 1억 7천만 원에 판매되면서 엄청난 화제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행위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가 작품을 먹은 뒤에, ‘1억 7천만 원짜리 맛이 난다'라고 이야기하며 많은 충격을 안겼죠. 하지만, 작품 제작자인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괜찮다’ 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작품은 개념미술 사조를 따라요. 작품에 사용된 재료보다, 작가의 아이디어가 중요하죠. 카텔란은 필연적으로 썩어 사라질 수밖에 없는 바나나를 재료로 선택해, 전시 기간 동안 계속 교체할 수 있는 규칙을 부여했습니다. 이 규칙은 보증서에 담겨있죠. 그래서, 작품 자체보다 작품의 보증서가 더 큰 가치를 가집니다. 바나나는 2-3일에 한 번씩, 보증서 속 카텔란이 만든 규칙에 따라 교체되며 전시되죠. 전례 없는 새로운 아이디어는 많은 이들에게 신선함을 안기면서, 개념미술의 새로운 사례로 평가받았습니다.

 

이후 데이비드 다투나가 작품을 먹어치우면서, 화제성까지 갖게 되었죠. 이 사건 이후 코로나 때문에 전시되지 못하다가, 올해 우리나라에서 전시되었는데요. 사건 이후 첫 전시였기 때문에, 한 기자가 또 누가 먹으면 어떡하느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카텔란은 ‘괜찮다. 미술관 블랙리스트에 오를 순 있다’고 위트 있게 이야기하며, 본인 작품 테러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어요.

 

리움미술관 전시 포스터와 <코미디언>을 먹는 학생 © Instagram/@shwan.han

 

이후 실제로 서울대 재학 중인 남학생이 바나나를 먹었고, 미술관에서는 별다른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인 카텔란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고 이야기했고요. 하지만, 이건 매우 특별한 사례입니다. 일반인의 작품 테러는 대부분 용인되지 않아요. 대신, 테러 가해자가 예술가라면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2) 당사자 간 합의: 지워진 드 쿠닝의 그림

Robert Rauschenberg, Erased de Kooning Drawing (1953) © SFMOMA

 

<지워진 드 쿠닝의 그림>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작품은 제목 그대로, 드 쿠닝의 그림을 지운 작품이에요. 드 쿠닝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품 2위에 올라있는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런 드 쿠닝의 그림을 로버트 라우센버그라는 예술가가 1953년 지워서 세상에 내놓았죠.

 

사실 라우센 버그는 이전부터 본인 작품을 지워내는 작업을 줄곧 진행해 왔습니다. 일종의 자기 성찰적이고 자기반성적인 작업이었는데요. 큰 이목을 못 끌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작품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추상표현주의 대표 작가, 윌렘 드 쿠닝 작품 지운 건데요. 이마저도 주목을 못 받았어요.

 

시간이 한참 흘러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회고전을 하면서, 이 작품의 비하인드를 공개합니다. 쿠닝이 본인 작품 지우는 데 동의하고 작품도 제공해 줬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가 퍼지면서 작품이 비로소 주목받게 되죠. 소식을 들은 윌렘 드 쿠닝이 상당히 분노했었다고 해요. 예술가 간의 교류는 암묵적으로 공개하지 않기로 해서 그렇습니다.

 

Jean Tinguely, Homage to New York (1960) © Wiki Art / © Galleria d'Arte Maggiore

 

그렇다면 왜 지우는 건 괜찮다고 한 걸까요? 이건 예술 사조 중 하나인 파괴예술로 이해할 수 있어요. 작품을 찢거나, 불태우는 등 테러를 가하는 예술인데요. 긴 미술사에서 작품은 늘 만들어지는데 초점을 맞춰왔는데, 반대로 파괴하는데 초점을 맞추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장르입니다. 이 맥락 안에서 <지워진 드 쿠닝의 그림>도 이해할 수 있고요.

 

물론, 그냥 막 하면 안 됩니다. 라우센버그의 말실수 때문에 우리가 알게 된 것처럼, 파괴예술이 진행될 때 예술가 간 어느 정도 합의를 하고 진행한다는 걸 알아둬야 하죠.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작품이 아닌 문화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당사자와 합의할 수 없었겠죠.

 

 

3) 직접 구매해서 테러: 한대 도자기 떨어뜨리기

Ai Weiwei, Han Dynasty Urn (1995) © Guggenheim Museum

 

물론 미술 작품 중에도 문화재를 테러한 케이스가 있어요. 중국의 대표적인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인데요. 기원전 2세기경 한나라 시대 유물인 도자기를 떨어뜨려 박살 내는 퍼포먼스를 선보였습니다. 이건 세 폭짜리 사진작품으로 남아서 우리나라에서도 수 차례 전시된 적 있어요.

 

사진은 각각 아이 웨이웨이가 도자기를 들고 있는 모습, 떨어지는 모습, 떨어져 깨진 모습을 담고 있는데요. 5천 년 된 문화재를 박살 내는 퍼포먼스는 그 자체로 충격이었지만, 쉽게 비난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 웨이웨이가 직접 구매한 도자기였거든요.

 

© Le Figaro

 

또 작품에 담긴 의미도 컸습니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 그들이 지워버린 문화재에 관한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많은 문화재가 문화대혁명 시기 공산당 때문에 소실됐고, 얼마 남지 않은 문화재에 관한 관심을 환기한 겁니다.

 

아이 웨이웨이는 1990년에 생업으로 고미술품 매매를 하기도 했을 정도로 문화재에 대해 지식이 많은 작가입니다. 그리고 이를 적극 활용해, 고대 도자기에 코카콜라 로고 같은 서구의 대표적 상표를 그리거나, 문화재를 재조합해 초현실 조각을 제작한 작업도 선보였죠. 중국의 전통문화를 재해석하고, 환기한 시도는 신선하게 비쳤고, 고미술품 레디메이드라 불리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불리기도 해요.

 

© Artcentron

 

정리하면, 미술품 테러가 예술이 되는 데에는 세 가지 규칙이 있습니다. 작품 제작자가 승인한 경우, 당사자 간 합의한 경우, 직접 작품을 구매한 경우. 한 가지 정도를 더 더하자면, 뱅크시처럼, 본인 작품을 본인이 직접 파괴한 경우가 있을 것 같아요. 이들은 모두, 철저한 설계 하에 진행된 파괴예술작품입니다.

 

 

하지만 최근 일어난 사건은 모두 해당이 안 되죠. 이제라도, 본인이 한 행동의 맥락을 다시 짚어보고, 반성하며 형량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술은 생각보다 만만한 게 아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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