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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이슈

팬톤이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이유 | 피치 퍼즈 Peach Fu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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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ntone

 

2024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신년이 되면 미술계는 루틴처럼 올해의 컬러에 주목해요. 매년 팬톤이 내놓는 올해의 컬러는 한 해의 트렌드가 되어 소비되기 때문이죠. 2024년 선정된 올해의 컬러는 '피치 퍼즈 Peach Fuzz'. 베이지에 코랄 빛이 살짝 섞인, 살몬 핑크 같은 러블리한 컬러예요. 따뜻한 봄기운이 느껴지기도 하고, 보기만 해도 화사한 느낌을 자아내는 컬러인데요.

 

올해의 컬러를 살펴보기에 앞서, 팬톤에 대해 살펴볼게요. 팬톤은 뭐하는 기업이기에, 매년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는 걸까요? 그리고  그들이 선정한 컬러는 왜 이렇게 큰 영향력을 가질까요? 또 올해의 컬러는 어떻게, 왜 선정되는 걸까요?

 

 

[1] 팬톤, 뭐 하는 기업인가

© Pantone

 

우선, 팬톤은 '색깔'을 파는 기업이에요. 어떻게 색깔을 팔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정확히는 색깔에 대해 사람들이 느낀 불편함을 해소한 기업입니다. 사실 색은 매우 추상적인 개념이에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빨간색을 떠올렸을 때 누군가는 사과를 떠올릴 수도, 누군가는 노을을 떠올릴 수도 있어요. 

 

반대로, 색을 더 예민하게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성분들 화장품 구매할 때, 다 비슷해보이지만 다른 컬러라고 하죠. 하늘 아래 같은 색조는 없다면서요. 이처럼 색은 추상적이라, 어떤 이들은 뭉뚱그려 보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예민하게 차이를 파악하기도 합니다. 감도가 사람마다 매우 다른 것이죠.

 

© Pantone

 

그렇다 보니, 색을 다루는 기업에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미묘한 차이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질 수 있는데, 기획 단계와 완성품의 색이 달라지면 큰 오차가 되기 때문이죠. 그리고 이런 어려움을 해소했다 불리는 게 팬톤입니다.

 

팬톤의 시작은 미약했어요. 뉴욕 시내에 작은 인쇄회사로 출발했죠. 당시 이름은 M&J였어요. 하지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며 회사의 운명이 뒤바뀝니다. 당시 화학과에 재학 중이던 학생, 로렌스 허버트(Lawrence Herbert)죠. 허버트는 M&J에 인쇄기사 아르바이트 생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하던 중, 사람들이 똑같은 이야기를 하는 걸 발견해요. '내가 원한 색이 아닌데...'라는 말이었죠. 

 

팬톤 설립자 Lawrence Herbert © IDCrawl

 

이를 해결하기 위해, 허버트는 색을 단순하게 공식화하는 작업을 시작해요. 화학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색에 숫자를 붙이고 표준화 시켰습니다. 인쇄할 때 '강렬할 빨간색'으로 해주세요가 아닌, '125번 빨간색으로 해주세요'라고 요청할 수 있게 만든 거죠. 덕분에 허버트가 있는 프린트 부서의 이익은 크게 증가합니다.

 

이후 아르바이트생이었던 허버트는 1962년, 직접 회사를 인수하고 이름을 바꿉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팬톤'으로요. 이 시점부터 팬톤은 색깔에 대해 엄청난 영향력을 갖게 됩니다. 

 

 

[2] 팬톤, 어떻게 영향력을 갖게 되었는가: 팬톤 매칭 시스템, 팬톤 색채 연구소

© Pantone

 

인수 이듬해부터 허버트는 '팬톤 매칭 시스템(Pantone Matching System: PMS)'이라는 사업을 하기 시작해요. 오늘날의 팬톤을 만든 매우 기념비적인 사업이죠. 이때는 단순히 색에 번호를 붙이는 걸 넘어, 모든 매체에서 색을 동일하게 구현하는 작업까지 진행합니다. 

 

실제로 똑같은 색깔이라도 인쇄되는 매체에 따라 색이 미묘하게 달라져요.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는 색과, 종이에 인쇄했을 때 색이 다르고, 플라스틱이나 섬유에 인쇄할 때 달라집니다. 팬톤 매칭 시스템은 이 지점에서 착안해, 한 가지 색상을 다양한 매체와 용도별로 표준화시켰어요. 덕분에 어떤 매체에 프린트하더라도 똑같은 색을 구현할 수 있죠.

 

© Pantone

 

그렇게 팬톤이 체계화 한 색이 1만 가지 이상이나 됩니다. 팬톤은 이 시스템을 '팬톤 스탠다드'라 이름 붙여, 색의 표준과 기준을 본인들로 브랜딩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든 색깔에 로열티를 부여해 다른 잉크 회사에 판매했죠. 

 

색깔에 대해 사람들이 느낀 불편을 해소하며 시작한 팬톤은, 이제 색을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분야에 지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문제를 해소하는 걸 넘어, 본인들이 절대적 기준이 되었으니까요. 하지만 팬톤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색을 통해 선보일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죠. 

 

1986년, 팬톤은 팬톤 색채 연구소를 설립합니다. 색이 주는 이미지를 분석하고, 이를 이용하는 가이드를 제시하기 위함이었죠. 오늘날엔 익숙하지만 당시로선 낯설었던 개념인, 컬러 컨설팅을 시작한 겁니다. 기업을 위한 컬러 제안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 쓰이는 컬러들의 공통점과 특징을 분석해 트렌드까지 제시했죠. 색의 기술적, 심미적 활용 방법을 모두 제시한 팬톤은 컬러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3] 팬톤이 매년 올해의 컬러를 내놓는 이유

© Pantone

 

팬톤은 자사가 가진 영향력을 활용해, 1999년부터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기 시작했어요. 선정된 컬러는 팬톤 내 데이터 에널리스트와 연구가들이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합니다. 이들은 문화예술 카테고리를 주로 연구해요. 한 해동안 흥행한 영화나 미술 전시회, 라이징 아티스트, 패션 컬렉션, 시각, 건축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죠. 또 떠오르는 여행지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방식, 스포츠 이벤트, 사회 경제 트렌드 등을 다양하게 살펴본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분석해 나온 결과를 색상 언어로 변환해 전달해요. 표현이 조금 어렵지만, 리포트의 결과가 색깔로 나온다고 보면 쉽습니다. 기존에 색이 가진 이미지와 가치를 분석해, 한 해의 트렌드와 비교해 선정하죠. 그렇게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는 25년째, 다양한 시각 분야의 트렌드를 제시하고 있어요. 

 

 

[4] 2024년 올해의 컬러: 피치 퍼즈

© Pantone

 

올해의 컬러는 피치 퍼즈입니다. 직역하면 복숭아 솜털, 스킨톤의 따뜻한 컬러에요. 팬톤은 올해의 컬러를 선정하며 매년 그 이유를 밝히곤 하는데, 피치 퍼즈는 새로운 현대성을 제시하는 컬러로 선정되었습니다. 엄청난 기술 발전 속도와, 과도한 이익 추구 사회에서 인간성의 가치를 다시 떠올리고자 선정했다고 해요. 

 

피치 퍼즈 컬러는 단순하게 보면, 베이지에 핑크가 살짝 섞인 느낌인데요. 사실 베이지 컬러는 서구권에서 그리 좋은 이미지를 가진 컬러는 아니었어요. 베이지라는 어원은 '염색하지 않은 양털'에서 온 것인데요. 밑칠하지 않은 캔버스도 베이지 컬러입니다. 이 때문에 베이지는 완성된 색깔이라기보다, 재료의 색깔처럼 느껴졌어요. 패션계에서 종종 사랑받긴 했지만, 베이지 색깔 자체가 주인공으로 쓰이기보다 다른 컬러를 받쳐주는 역할로 쓰이곤 했죠. 

 

코스믹 라테 컬러 © itch.io / 수잔 필립스의 책 © Amazon

 

20세기 접어들면서 베이지가 주인공으로 주목받은 적이 한 번 있었는데요. 당시엔 베이지가 아닌 '코스믹 라테'라는 이름으로 유행했어요. 당시 두 명의 과학자가 20만개의 은하계를 조사한 결과, 우주 전체를 놓고 보면 일종의 베이지 색이라는 걸 발견했는데요. 무언가 섹시한 이름을 붙이고자 코스믹 라테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하지만 유행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이후에도 베이지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어요. 2005년 발간된 수잔 필립스의 책 <집을 매력적으로 판매하는 일곱가지 방법>에서는 '집을 잘 팔고 싶다면, 인테리어에 베이지 색은 쓰지 말라'는 내용이 적혀있죠. 이 책에선 베이지에 대한 다채로운 혐오 표현을 쏟아내요. 이 악물고 일궈낸 무해함의 바다 같은 색이라거나, 고상하면서도 밍밍한 소비주의의 색이라는 등 다양하죠. 누구도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호불호 갈리지 않아 자본주의에서 선택하기 좋은 무난한 컬러인 덕분이에요. 

 

© Alaïa

 

© Pantone

 

그럼에도 올해 선정된 피치 퍼즈는, 단순한 베이지가 아닌 코랄 색이 섞인 베이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2018년 팬톤은 올해의 컬러로 '리빙 코랄'을 선정했어요. 코랄은 바닷속 산호에서 가져온 컬러예요. 산호는 바닷속 동물들의 서식지이자, 먹이로 기능하면서 해양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책임집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코랄이 가진 생명력이 강조되는 것이죠. 

 

또 코랄은 베이지와 합이 아주 잘 맞습니다. 이악물고 일궈낸 무해한 컬러에 코랄을 조금 더하면, 생명력 넘치는 핑크빛 베이지가 되죠. 이 컬러는 실제로 사랑스러움이 가득한 로코코 양식의 작품 속, 여인들이 입은 드레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답니다. 최근 올드머니룩이 유행하며 베이지 톤에 대한 소구가 올라오곤 했는데요. 이런 흐름 속 새로운 스테디 컬러가 될 것 같은 기대를 자아내는 컬러가 될 것 같아요. 팬톤이 선정한 올해의 컬러, 피치 퍼즈.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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