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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이슈

키스 해링 작품 무단으로 완성한 AI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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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AI가 우리 일상에 너무 많이 스며들었죠. 하지만 예술에 있어서는 여전히 논쟁적입니다. 최근 일어난 키스 해링 Keith Haring 작품 무단 완성 사건은 여전히 담론이 치열하다는 걸 보여줘요. 

 

화제가 된 키스 해링의 작품 Keith Haring, Unfinished Painting (1989) © Keith Haring Foundation

 

이번에 이슈가 된 작품은 키스 해링의 1989년 회화 작품입니다. 제목은 <미완성 회화 Unfinished Painting>. 그림을 그린 키스 해링은 앤디 워홀과 함께 팝아트의 대표 작가로 손꼽혀요. 밝고 통통 튀는 캐릭터들과 화려한 색감은 해링의 아이덴티티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이번에 화제가 된 작품은 기존 키스 해링의 것과 매우 달라요. 작품의 주조색은 보라색인데, 이 물감이 캔버스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침울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또 기존과 달리 캐릭터들에게서 느껴지는 생동감도 적어요. 전반적으로 심상이 우울합니다.

 

가장 주요한 특징은 캔버스 왼쪽 상단 윗부분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1/4 정도만 그려지고, 나머지는 비워진 걸 볼 수 있어요. 이건 의도적으로 해링이 비워둔 겁니다. 이 그림을 그렸던 건 1989년입니다. 해링의 나이 30살 때이자, 해링이 죽기 1년 전이죠. 

 

당시 해링은 HIV 전염병, 그리고 이로 인한 합병증을 앓고 있었어요. 때문에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은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HIV로 먼저 세상을 떠난 수백만 명을 기리고자, 그들의 빈자리를 공백으로 표현했어요.

 

그런데 최근, 소셜미디어 X의 이용자가 AI 기술을 활용해 이 작품을 완성시켜버렸습니다. 

 

 

AI 기술로 완성한 키스 해링의 그림 @donnelvillager

 

사건은 2023년 12월 31일 벌어졌어요. 아이디 @donnelvillager라는 계정이 다른 사용자의 트윗에 대한 응답으로 완성된 키스 해링의 회화 작품을 게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림에 숨겨진 뒷 이야기가 너무 슬프네요!"라고 했고, 뒤이어 "이제 AI를 활용하면 그가 끝내지 못한 작업도 끝낼 수 있어요"라 언급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로 갈렸어요. 첫째로는 "무례하다". 키스 해링이 끝내지 못한 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끝내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작품의 의도를 담은건데, 이걸 마음대로 바꾼 것이 무례하다는 게 가장 많은 반응이었어요.

 

또 이 작품은 유일한 미완성작이에요. 그만큼 이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명확한 건데요. 이걸 완성시킨다는 것은 곧, 작품의 의미 자체를 부정해 버렸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심지어 뒷이야기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슬프다고 공감했으니까요. 이는 더 나아가 ‘80-90년대 에이즈로 목숨을 잃은 수만 명의 퀴어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는 반응까지 끌어냈어요. 

 

둘째로는 "상관없다". 키스 해링은 유명세를 얻고 나서도, 본인 작품이 고가에 거래된 후에도 계속 지하철이나 길거리에 작품을 그렸습니다. 거리예술가의 정체성을 살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예술을 미술관을 찾는 사람 외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길 바라는 마음 때문이었죠. 

 

물론, 이 과정에서 해링 작품 위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식으로 작품이 훼손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해링은 계속 거리 예술을 진행해왔어요. 이걸 고려하면, 상관없을 거란 반응도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건 실제 작품을 훼손한 게 아니라 디지털 이미지를 제작한 것일 뿐이니 더더욱 괜찮다는 의견도 있었죠.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이 작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어요. 이들은 이 작업이 오늘날 시대적 변화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주목할만하다고 말합니다.. 키스 해링이 세상을 떠난 후, 오늘날에는 에이즈로 고통받는 사람은 사라졌고, AI 기술이 발전하게 되면서 가능해진 것들을 보여준 시도라는 것이죠

 

키스 해링 반응을 Chat GPT에게 물어본 트위터리안 © X

 

마지막으로는 AI 기술의 활용 가능성을 테스트해 보는 반응이었습니다. 어떤 과정으로 이 작품을 완성했는지 분석하는 사람도 있었죠. 또다른 X 유저는 Chat GPT를 활용해 이 그림 완성에 대해 키스 해링이 살아있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질문하기도 했는데요. 답변이 다소 황당합니다. Chat GPT키스 해링이 살아있었다면, 이 작품을 보고 창의력과 예술적 표현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협업 정신의 증거라고 생각할 것"라고 답변했죠.

 

하지만 이건 키스 해링의 의도와 완전히 상반돼요. 해링은 캔버스를 비워두면서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렸습니다. 추모의 의미를 완전히 지워버린 작품을 해링이 좋아할 거라 보는 건, AI의 팔이 안으로 굽는 모습처럼 보였죠. 

 

© Keith Haring Foundation

 

해링은 전부터 작품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오곤 했어요. 그리고 태도가 제법 강경했죠. 약물 남용이나 에이즈, 동성애자, 핵 종말 같은 금기시되는 주제를 작품에 다루면서 그 심각성을 인지할 필요를 강조했습니다.

 

키스 해링의 대표작 Ignorance = Fear (1989) © Keith Haring Foundation

 

가장 대표적으로는 1989년 작품, <Ignorance = Fear>가 있습니다. 이 작품은 키스 해링이 평생 선보인 작품의 특징이 모두 담겨 있어요.

첫째로는 작품 스타일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세 명의 사람이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입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작품에 사용된 선도 매우 두껍고, 색상도 밝고 강렬한 것을 사용했어요. 인물들의 캐릭터도 매우 단순하고 명확합니다.

 

이처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구현한 이유는, 더 많은 대중이 작품의 메시지를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겁니다. 해링은 1980년 활동 당시에 만연했던 에이즈의 위험을 진심으로 사람들이 알길 바랐어요. 그리고 눈을 막고, 귀를 막는 것은 결국 두려움이 될 뿐이라는 걸 간결한 그림과 단어들로 표현했죠. 이는 그의 작품 말년, 20대 후반부터 30대 초까지 죽음을 앞두고 이런 경향이 더 짙어지는 모습을 보입니다.

 

Wand 웹사이트 © Wand

 

해링이 이 작품을 좋아했을 진 모르지만, AI 기술은 계속 빠르게 발전 중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아티스트용 AI 플랫폼 Wand에 대해 보도하기도 했어요. Wand는 예술가 본인의 작품을 데이터로 학습시키고, 그리고 싶은 작품 스타일을 텍스트로 입력하면, 작품들을 그려내 제안해 줍니다. 여기까지는 기존의 생성형 AI와 동일해요. 새로운 건 그 이후입니다.

 

예술가가 마음에 드는 작품을 몇 개 고르면, 그걸 기반으로 고도화한 다른 이미지를 또 보여줘요. 마치 유튜브 알고리즘처럼, 끊임없이 비슷한 다른 작품을 제안하죠. 이런 제안이 궁극적으로는 예술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란 의미에서 플랫폼 이름도 Wand, 지팡이라 지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지점도 있어요. 작품을 고도화하는 과정에서, 예술가 본인 작품만 데이터로 활용하는 게 아닌 기존 다른 예술가의 작품까지 참고한다는 점이죠. 이때문에 예술을 다루는 AI에서는 계속 저작권 문제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기술은 점점 더 발전하는데, 논쟁이 되는 주제는 전부터 계속 동일하게 저작권이죠. 

 

현재 미드저니, Stability AI, Devian Art 등 텍스트 기반 이미지 생성형 AI를 대상으로 집단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 회사들은 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해 원 저작자의 동의나 허가 없이 막대한 양의 자료를 스크랩하고 있어요. 여기에 포함된 예술가들이 쟁쟁합니다. 쿠사마 야요이, 뱅크시, 데미안 허스트, 키스 해링 등이 있죠. 키스 해링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재단이 작품을 철저히 관리중이고, 생존 작가도 많아서 소송이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AI 기업들의 주장도 강경해요. Open AI는 최근에 저작권이 있는 자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늘날의 주요 AI 모델을 교육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장했습니다. chat GPT 역시 저작권 만료된 자료로만 교육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그러면 오늘날 이용자의 요구를 충족하는 AI를 시스템을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이야기했죠. 기술 발전을 위해 저작권 침해가 불가피하다는 건데요. 계속 논의가 이어져야 할 문제이지만, 당분간은 앞서 소개한 Wand의 사례처럼 예술가를 돕는 지팡이 정도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VR 보급 속도가 아이폰 보급 속도보다 빠른 오늘날, 발전하는 기술 속도를 담론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 기술과 저작권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은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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